최근 IB(투자은행)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SK스퀘어의 11번가 콜옵션 포기'입니다. SK스퀘어가 콜옵션 행사 포기를 결정한지 3주가 넘었지만 투자자와의 암묵적 약속을 어긴 점을 두고 투자금융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모습입니다
지난달(11월) 29일 11번가 최대주주 SK스퀘어는 재무적투자자(FI) 나인홀딩스컨소시엄 보유 지분(18.18%)에 대해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SK스퀘어의 콜옵션 포기 결정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2018년 11번가를 운영하던 SK플래닛은 나인홀딩스컨소시엄(국민연금·H&Q코리아파트너스·MG새마을금고)에 지분 18.18%를 넘기면서 5000억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습니다. 당시 투자를 유치하면서 SK플래닛은 FI들에게 5년 내 11번가 상장을 마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로 인해 5년의 기간동안 11번가는 2021년 사내 ‘IPO(기업공개) 추진팀’을 신설하고, 한국투자증권, 골드만삭스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상장에 도전했지만 1조원대로 급감한 기업가치 등으로 상장에 실패했습니다. FI 투자 유치를 받을 때 11번가의 기업가치인 2조7500억원 수준 대비 반토막 난 규모이기 때문입니다.
11번가의 기업가치가 급감한 까닭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 거래량이 급증했지만 네이버와 쿠팡 등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적 부진을 이어온 탓입니다. 11번가는 지난 2020년 98억원, 2021년 694억원, 2022년 151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올해에도 3분기 누적 기준 32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SK플래닛은 FI 측과 콜앤드래그(call and drag) 계약을 맺었습니다. 올해 9월 30일까지 11번가 IPO를 완료하지 못하면 FI가 SK의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도록 하되(드래그얼롱), 이 전에 SK그룹이 지분을 다시 되살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콜앤드래그 계약 구조를 두고 시장에서는 기업이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암묵적인 룰로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말 SK스퀘어가 콜옵션 미행사를 선언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로 인해 자본시장에서는 콜앤드래그 계약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입니다. 일부에서는 드래그앤콜 투자 조건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오히려 계약이 더 정교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PEF)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이 있으면 투자금이 부채로 계상되기 때문에 풋옵션을 선호하진 않는다”면서 “과거 IMM PE(프라이빗에쿼티)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 등 논란 속에서 콜앤드래그 계약이 유지돼 온 만큼 여러 사태를 겪으며 계약이 보완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SK스퀘어의 콜옵션 행사 포기가 SK그룹에 대한 투자 감소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투자금융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이번 SK스퀘어의 11번가 콜옵션 사태로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어떻게 엑시트(투자금 회수)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원스토어, 티맵모빌리티를 비롯한 SK그룹이 소유한 비상장사 등 SK그룹에 대한 투심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가운데 IPO(기업공개) 시장에서의 파두 사태, 새마을금고의 출자 중단 등의 악재도 함께 있는 상황에서 전체적인 투자금융 시장에서 활발하게 투자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다른 의견도 나옵니다. SK그룹이라는 국내 주요 대기업에 대한 투자유치가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고 개별 프로젝트 별로 봐야 한다는 시선입니다.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포트폴리오 중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이 걸렸거나 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례를 전수조사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 측면에서는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별도의 프로젝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은 과도한 우려가 아닐까 싶다”면서 “SK스퀘어의 콜옵션 포기로 전체 IB 업계 프로젝트 자체가 어려웠다는 것보단, 프로젝트 별로 텀시트(Term-Sheet, 합의서) 등이 다른 만큼 프로젝트 별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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