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CFO 리포트] 대선비정(大善非情)의 계절, KB·신한·하나·우리금융 CEO의 소명의식

Numbers 2024. 1. 2. 08:19

정권이 바뀌거나 회사 CEO 교체기 때마다 은행과 금융지주 수장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최근 CEO를 교체한 KB금융지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런 바깥바람 정도는 주어진 외생변수로 치고 늘 호사다마(好事多磨) 덤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조직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익숙한 통과의례, 통제할 수 없는 한국 금융회사 수장들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마땅히 치루어야 할 비용으로 습관화된 지 오래다.

이러한 외풍 못지 않게 매년 조직을 점검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12월 즈음은 모든 CEO들에게는 아주 고통스럽고 잔인한 달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동안 의기투합하여 동고동락하며 함께 일해온 동료, 선후배들 중에 동행하지 못하고 하차를 알려야 하는 일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은행을 비롯한 한국의 금융회사 직원들 대다수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과 아쉬움은 많이 있지만 전체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가야 할 CEO 입장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누르고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통보하지만 눈에 밟히는 동료 가족들 생각 등 불편한 심정은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면 늘 ‘소선(小善)은 대악(大惡)을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을 닮아 있다’고 말한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주 말을 떠올리곤 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는 대만(1월), 인도네시아(2월), 러시아(3월), 인도(3월), 이란(3월), 한국(4월), 유럽의회(6월), 미국(11월) 등 국내외 예정된 선거일정이 연이어진다. 모두 알고는 있지만 통제 못할 위험이 많은 해이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어진 2020년 펜데믹 대응과정에서 과도하게 풀린 돈의 부작용 치유과정이 지속되면서 각국의 재정금융 정책변화 영향 등 대내외 경제여건 불확실성이 어느 때 보다 커질 것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경이적인 인구학적 변화와 저성장 심화로 내수기반 산업인 은행 성장과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국내 4대 금융지주들은 작년말 조직정비와 인력 재배치를 마무리하고 치열한 경주(競走)를 이미 시작했다.

금년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대응하는 회사들의 전략은 대부분 안정과 내실 다지기에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4대 금융그룹 조직개편과 인사 후기들을 종합하면 대체적으로 조직 효율과 안정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지주 CEO 변동이 없는 우리금융은 기업금융과 비은행 비즈니스 확충에 집중하고, 하나금융 역시 10개 계열사 중 7개 계열사 대표들이 연임되어 변화보다 안정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내년도 그룹의 영업과 수익기반 약화에 선제적 대비 차원에서 슬림화와 효율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9개 계열사 대표이사를 전원 유임시키고 업무영역이 중첩되는 사업부분을 대폭 통폐합하고 중장기적인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등 안정을 선택했다.

 



KB금융은 임기 만료된 8개 계열사 CEO중에서 6개 회사를 교체하고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KB증권 IB부문과 KB인베스트먼트는 유임을 시켰다. 거버넌스 교체기에 외견상 안정보다는 약간의 변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이 아니라 조직운영은 슬림화와 효율화, 인력운영은 비즈니스 이해와 전문성이 고려된 무난한 선택이었다. KB증권 WM부문, KB손해보험 등 주요계열사의 CEO를 은행 영향권에서 벗어나서 내부인력을 발탁했다. 향후 계열사 경영은 전문성과 비즈니스 특성을 감안하여 자체 인력풀을 육성, 활용하고 책임경영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평가이다.

4대지주 공히 지주 부회장직이나 은행 전무 폐지 등 직급 간소화로 ‘신속한 의사결정체계 확보’, 사업부문 통폐합 및 축소를 통한 ‘업무 시너지 제고’, 전방위적인 정치사회적 압력에 대응한 ‘상생금융’이 키워드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조직 슬림화와 운용효율을 통한 내실을 다지고, 인력운용은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이 두어진 모습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전직 어느 대통령 한 분의 인사철학이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니라 ‘적소적재(適所適材)’였다고 한다. 언뜻 말 장난 같지만 기업경영 현장에서는 사실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야 할 일을 먼저 구체적으로 정하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사람을 안밖으로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적소적재’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대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챙겨줄 자리를 찾는 경우도 허다(許多)하다. 겉으로 보기에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디테일과 조직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은행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국내 금융지주 특성상 계열사는 은행 인력운용의 엑싯 프로세스 (Exit Process)일환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인 경영자 후보 풀(Pool)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차원에서 계열사의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이런 경우 계열사 보임을 받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계열사 자체 조직의 활력과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도 항상 고민거리로 남는다. 개인기가 중요한 특수 직군이 아니라 조직력과 협업에 방점을 두는 대부분의 비즈니스 조직에서 ‘적소적재’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조직에서 구성원들에게 보상하는 방법은 ‘자리(보임)’와 ‘돈(급여)’, 두 가지이다. 소속 회사에서 더 이상 보직을 줄 여건은 아니지만 좀 더 보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금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그룹 및 계열사의 조직관리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회사일수록 앞서간 선배들이 남긴 자산도 많지만 못지 않게 줄여 나가야 할 부채도 많다. 새로 임무를 맡은 후임자는 전임자가 쌓아 놓은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이어 받게 되는 것이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가 아니라 자산은 키우고 부채는 줄여서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서 다시 후임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요즘시대 진부한 말이지만 소명의식(召命意識)인 것이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 ‘평온의 기도(The Serenity Prayer)’는 새롭고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삼는 문구이다. 전하는 메시지가 워낙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삶의 나침반 같은 경구라서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공감과 울림을 준다.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평온(Serenity)’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Grace)’을 주시고, 바뀌어야 하는 것들은 바꿀 수 있는 ‘용기(Courage)’를 주소서,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Wisdom)’를 주옵소서".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아침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온’과 ‘용기’와 ‘지혜’가 늘 함께 하길 소망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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