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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자본이 키운 유니콘, 국내 VC펀드 대형화 과제는?

Numbers 2023. 10. 6. 17:34

(사진=게티이미지)

 

국내 유니콘 기업이 해외 자본으로 성장한 것과 연관해 국내 벤처캐피탈(VC) 펀드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를 위해 모태펀드 등 공적자금을 대형 펀드 운용과 유니콘 기업 육성에 전문성 있는 VC에 집중적으로 출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 의존에서 벗어나 민간자금과 해외자금 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기적으로 해외 자본이 지금과 같이 한국 유니콘 기업을 키우는 경향이 지속되면 국내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자본이 키운 국내 유니콘 기업...왜?

 

국내 유니콘 기업인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컬리, 무신사, 야놀자,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당근마켓 등이 해외 투자사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대표적 사례다. 유니콘 기업으로 엑시트(인수합병·기업공개 등)에 성공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쿠팡 등도 마찬가지다.

1조원이 넘는 투자를 받은 비바리퍼블리카에 자금을 댄 투자사들은 미국, 영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후속 투자를 통해 비바리퍼블리카 지원에 적극 나선 해외 투자사는 알토스벤처스(미국), 페이팔(미국), 굿워터캐피탈(미국) 등이 꼽힌다. 컬리 역시 1조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다. 올 4월 앵커에퀴티파트너스코리아(홍콩)와 애스펙스매니지먼트(홍콩)가 1200억원을 투자했다. 컬리 투자사인 디에스티글로벌(러시아)은 당근마켓에도 투자한 큰손이다.

 

(사진=비바리퍼블리카)

 

해외 자본이 그간 국내 유니콘 기업을 키워왔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펀드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 1조원(10억 달러) 이상의 기업을 말한다. 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VC가 펀드 하나를 운용할 때 투자 포트폴리오를 10~20개 정도 담는다.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한 회사에 베팅하려면 펀드가 적어도 1조원 규모가 돼야 한다는 계산이다. 특히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스케일업(규모 확대)이 필요한 단계에 제때 큰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국내 VC 가운데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곳은 없다. 얼마 전 국내 VC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결성한 사례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로 8000억원이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원 펀드’ 전략으로 대형 펀드를 조성해 투자 역량을 집중하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VC 펀드 대형화 과제는?

 

이에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단순히 국내 유니콘 기업 수를 늘리는 데만 그칠 게 아니라 그 토양이 되는 대형 펀드를 조성하는 일을 지원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선 모태펀드 출자금이 유니콘 기업을 키울 수 있는 전문성 있는 VC에 상대적으로 집중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VC 대표는 “국내에서 대형 펀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VC 수 자체가 너무 많은데다 여기에 모태펀드 등이 출자하는 금액은 너무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창업투자회사(창투사)는 231개,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는 156개사다. 더불어 액셀러레이터들도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도전한다. 현재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펀드에 출자하는 모태펀드 규모는 펀드당 100~300억원 수준이다. 이를 출자 받아 결성하는 최종 펀드 결성 금액도 많아야 2000억원에 그친다.

VC 대표는 “외국계 대형 자본들은 단순히 재무적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십이나 해외 진출,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한 네트워크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며 “특히 국내 VC들은 특별한 것 없이 다 똑같은데 펀드 대형화와 전문화가 가능한 곳을 지원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국내 유니콘 기업 육성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모태펀드 출자사업 관계자도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기까지 보통 적게는 3~4번, 많게는 6~7번까지 투자를 유치하는데 토종 자본으로 그게 안 됐다는 건 기본적으로 국내 벤처 투자가 초기 중심으로 진행된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하는 단계에선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국내 유니콘 기업에 대형 투자를 한 해외 기관 사례가 많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사진=한국벤처투자)

 

다만 펀드 대형화를 위해 모태펀드 등 공적자금에만 기댈 순 없다는 시각이다. 오지열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VC에 출자를 하는 공적자금의 경우 일정 기간 이내에 무조건 회수를 해야 한다거나 추가적인 자금요청을 까다롭게 설정한다거나 하는 등 제약이 많고 충분한 돈을 넣고 성과를 내기까지의 긴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데 대해서도 부담이 크다”며 “외부 여건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투자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단 공적자금에 대한 기대가 나오는 건 국내 VC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오지열 교수는 “아직 국내 VC가 엑시트한 돈을 가지고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해서 큰 규모의 자금을 가지고 유니콘 기업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VC가 처음 탄생한 때가 1940년대 후반이다. 미국 역시 공적자금을 기반으로 VC 초기 시장이 형성됐지만, 1960년대 민간 VC 역할이 확대됐다. 이후 벤처투자로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이 증명되면서 자금이 VC로 몰렸고 1980년대에 VC 시장이 성숙됐다. 국내 첫 VC는 1974년 정부가 직접 출자해 만든 한국기술진흥주식회사(현 아주IB투자)다.

공적자금이 아니라면 국내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등의 민간자금을 확보해 펀드를 대형화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선택지가 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신기사를, 대기업들은 CVC(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를 만들면서 VC업을 하고 있는 곳들이 늘어나서다. 특히 CVC 투자 규모 확대가 눈에 띈다. 2022년 기준 국내 VC 투자의 31%인 4조5000억원이 CVC에서 이뤄졌다. 이처럼 VC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줄어들다 보니, 국내에선 펀드 결성을 위해 VC가 상장에 나서는 실정이다.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민간자금 확보를 위해선 민간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앞선 모태펀드 출자사업 관계자는 “대형 투자가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펀드가 최소 몇 천억원에서 조 단위 규모여야 하는데 정부 혼자 출자해서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민간자금이 많이 유입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더 중요하다”면서 “국내 여러 금융기관이라든지 자본시장에 있는 자본들이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세제 혜택 등의 여건을 만들고 민간 모펀드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민간 모펀드는 민간 출자금으로만 펀드를 조성해 개별 자펀드에 출자하는 재간접펀드로 정부가 추진 중이다.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모태펀드 역할을 민간에도 확대하려는 목적이다.

해외 자금 확보도 펀드 대형화를 위한 과제 가운데 하나지만, 국내 VC들이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왔단 지적이 나온다. 싱가포르에 있는 투자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 VC들이 정부 돈을 출자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LP를 개발하지 않고 정부랑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노하우로 삼고 있다”면서 “싱가포르에 있는 로컬 VC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자본과 민간자금으로 펀드를 결성하고, 부족하면 중동이든 유럽이든 나가서 해외자금을 끌어오는데 한국 VC들은 한국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절실하다면 해외 LP들이 출자하기 편하게 케이맨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펀드를 만들면 되는데, (운영을 위한)돈이 많이 들고 당장 펀드를 만들어야 먹고 사니까 모태펀드 출자 계획에만 집중한다”면서 “글로벌화하려면 국경이 없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자꾸 모태펀드 출자받아서 펀드 규모만 늘려 전문성 없이 여기저기 투자하려 하는 인식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펀드 규모도 8000억원으로 크지만, 그 가운데 해외 LP가 출자한 금액은 100억원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의 자회사 버텍스홀딩스가 출자했다. 지난해 싱가포르 지사를 설립하고 첫 해외 LP 출자를 받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겐 의미 있는 성과다. 8000억원 가운데 본계정(자기자본)과 운용인력, 최대주주인 에이티넘파트너스 등이 출자한 금액이 1012억원이다. 나머지 또한 대부분 공적자금이 메웠다.

 

VC 펀드 대형화·전문화...금융 산업 경쟁력과 연결

 

지금처럼 해외 자본을 통해 국내 유니콘 기업을 키우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국내 금융 산업 경쟁력 약화다. VC도 금융 산업 플레이어 가운데 하나인데, 이제 질적 성장을 고민할 만큼 VC가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VC 투자 규모는 2021년 17조원, 2022년 14조원으로 추정된다.

VC업계 관계자는 “금융도 하나의 산업이고 모든 산업의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국내 금융 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금융 산업 플레이어 가운데 VC가 그나마 해외에 나가서 투자를 하고 돈을 벌어오는 플레이어다”고 설명했다. 이어 “VC를 금융 산업의 하나의 섹터로,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모델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펀드 대형화는 국내 VC가 국내 유니콘 기업을 키워 연관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용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지만, VC 자체의 대형화와 전문화로 국내 금융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오지열 교수는 “해외 VC도 결국 선별적인 투자를 할 텐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업사이드 포텐셜(상승 잠재력)이 큰 국내 기업은 다 해외 VC에게 자금 경쟁에서 뺏기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럴 경우 국내 VC가 2부리그처럼 고착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황금빛 기자 gold@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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