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아시아한항공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무산 사태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감안하더라도 각종 난제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이번 M&A가 정말로 국내 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한 일인지 여부에 의문 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인수에 필요한 과제 해소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인수 추진 이후 3년 동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당초 내세웠던 사업 시너지와 정상화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환경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예고된 출혈’에도 비상식적 강행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공식 발표하던 2020년 11월 당시만해도 두 국적항공사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에 '기대반 우려반' 분위기였다. 이후 각종 난제에 부딪히면서 3년동안 인수가 지연됐고 기대조차도 우려로 바뀌었다. 대한항공은 사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정까지 내리며 인수를 강행하고 있다. 산업은행도 여기에 동조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가장 큰 우려는 독과점 이슈다. 이는 동종업계 간의 인수 결정이 나올 때부터 제기됐다. 특히 독과점 이슈는 국내외 승인 기관이 오랜 시간 심사를 진행하기에 가뜩이나 미뤄진 M&A 기간을 더욱 늘어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2월 기업결합의 승인 조건으로 10년내 일부 슬롯(Slot·특정 시간대 이착륙 권리) 반납과 운수권 배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공정위는 양사가 모두 확보한 65개 국제선 중복 노선 가운데 26개 노선에 독과점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해외 심사에도 기준이 될 수 있는 공정위 심사는 1년이 넘는 기간이 걸리면서 전반적인 장기화로 이어졌다.
공정위 승인이 끝은 아니다.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까지 받기 위해서 추가로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할 수 없다. 대한항공은 주요 14개국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는데 11개국의 허가를 받았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EU가 5월 합병에 따른 화물 경쟁 제한 가능성을 우려하는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출혈이 크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합병 승인을 따내기 위해 슬롯과 운수권 재분배 카드를 제시했다. 앞서 영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기 위해 히드로공항에 보유 중인 7개 슬롯을 저비용항공사(LCC)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46개의 슬롯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EU와 미국의 승인은 장담할 수 없다. EU의 집행위원회(EC)는 양사 합병이 유럽 화물 노선에 경쟁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보완 조치를 요구했다. 이들은 대한항공의 조치를 가지고 판단하는 후행적 방식으로 진행한다. 대한항공은 이달 말까지 시정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유럽 4개 도시행 슬롯을 일부 반납하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경쟁당국의 구체적인 요구 조건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EU보다 엄격할 수도 있다. 공정위처럼 독과점 여부를 체크해서 시정 조치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미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재판을 진행하기에 따라서는 EU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공정위와 다르게 독과점 여지를 발견한다면 재판을 통해서 점검을 하는 방식인데 만약 3심까지 간다면 시간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한항공이 선정된 만큼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손실이 적은데 EU에서조차 승인을 못 받은 만큼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양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날개 꺾이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분기점’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진행하던 지난 3년동안 영업력을 비롯해 각종 서비스의 질적 하락 등의 문제에 노출됐다. 특히 신규 채용이나 투자 등의 제한으로 사업 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연결기준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한항공의 회복세에 비하면 기대이하 수준이다. 재무상 부채총계는 12조원을 넘기고 있어 부담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합병 절차 장기화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만 약화되자 관련 업계에서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저의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화물 사업 분리매각 추진은 그간 쌓였던 우려가 터지는 트리거로 작동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화물 분리매각은 배임”이라며 이사진 고발까지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달 30일 개최하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향후 M&A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는 화물사업 분리 매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전체적인 합병 여부를 판가름하지는 않지만 합병 지속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은 합병이 무산되면 추가지원은 없다며 이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지금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이 상황이 '상당한 혼란'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는 시간을 지체하면 아시아나항공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높은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을 분리하더라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곳은 대한항공과 산업은행 뿐이다. EU의 제동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가 불발된 HD현대중공업, ‘에어트랜색’ 인수를 추진하다 자진 철회를 선택한 에어캐나다 등의 사례도 회자되면서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M&A 결정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승인 여부가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경쟁력만 갉아먹고 있다”며 “합병 발표 당시에 취지와 약속을 재점검하고 득보다 실이 많으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윤필호 기자 noth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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