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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행 앞세운 사모펀드에 정부 계속 밀려
삼성 이 회장 승계 과정서 파생된 사회적 비용
중국을 최초 통일한 진나라의 법제를 기획하고 정착시킨 1등 공신은 '상앙(商鞅)'이다. 동아시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연좌제’를 비롯 철저한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진나라 통치체제를 만들어 훗날 진시황의 천하통일 기틀을 구축한 인물로 평가된다. 중국 역사가들은 상앙의 일생을 두고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대표적 사례로 전한다. 정치적 파트너이자 절대 후원자였던 진(秦) 효공(孝公)이 죽자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려 도망자 신세로 쫓기다 자신이 만든 법 때문에 붙들려 3족의 멸문지화를 당하고 거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최근 법무부는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이 ISDS 절차에 따라 제기한 투자손실 배상 분쟁에서 ‘국제중재판정부(PCA)’가 메이슨 측 주장의 일부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메이슨 측에 배상금과 지연이자로 3203만876달러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비용 중재비용 등을 합치면 한화로 590억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S) 절차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에 따라 불공정한 대우 등으로 발생한 손해를 ‘국제상설중재판정부’(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 중재를 통해 구제받는 절차다.
사모펀드 메이슨 관련 국제중재판정부의 일부 인용은 같은 사건으로 법무부가 이미 1차 패소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다투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할 전망이다. 2023년 6월 20일 국제중재판정부는 일부 인용으로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며 배상금과 이자로 5359만달러, 법률비용 2890만달러 등 한화 1300억원의 지급을 명한 바 있다. 현재 불복절차가 진행중이지만 정부 당국의 입장이 편해 보이진 않는다. 모두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 경영승계와 관련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송사에서 비롯된 일로 현재 진행형이다. 사법부와 금융당국의 엇갈린 판단 때문에 빚어진 일로 한국 정부와 사법당국의 자승자박이라는 지적이다.
엘리엇과 메이슨의 국제중재판정부 일부 승소 핵심이유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정부의 부당한 압력 행사’가 있었음을 한국 사법당국이 공식 인정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를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소추(2017년 3월 10일) 사유를 근거로 ‘한미 FTA에 따른 협정상 차별금지 위반’ 사실을 주장하는 엘리엇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엘리엇은 한발 더 나아가 ‘외국인 투자자 희생’을 대가로 국내 최대 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하도록 국수주의적 국민정서를 조작했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했다. 2019년 8월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사건’ 판결에서 이재용 부회장 경영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과 ‘부당한 권력 개입’ 혐의를 인정해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최종 유죄 판결했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검찰 재직시 박영수 특검팀에 판견돼 수사하고 기소했던 사건이다.
2024년 2월 5일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사건 1심에서 이재용 회장과 삼성그룹 전직 고위 임원들이 모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2016년 12월 참여연대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제기로 자본시장법상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등의 위법 혐의로 시작된 재판의 1심 판결 결과다. 이 판결은 같은 사건에 대한 상급 법원의 판단과 배치되는 결과다. 2019년 8월 대법원이 ‘국정농단’ 판결을 하며 삼성그룹 승계작업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 측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지배권 강화를 목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지적한 바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모순된 법원 판단은 2017년에도 이미 있었으며 법원 판결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서울중앙지법 ‘민사법원’과 위법 부당한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형사법원’의 서로 상반된 판결에 대한 우려를 다수 전문가들이 표한 바 있다.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지만 사법부 판사와 관할 법원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마다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온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일반인들을 불편하게 만든 일은 또 있다. 2015년 엘리엇과 일성신약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비율 불합리를 이유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며 요구한 주식 매수가격 상향 조정(6만6602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1월 1심 판결에서 삼성물산이 승소하자 엘리엇은 소송을 취하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당초 제시한 주식매수 청구가격(5만7234원)을 수용했다. 엘리엇이 소송을 취하하며 향후 법원의 매수 청구가격 조정 소송 결과에 따라 ‘차액을 정산’하기로 삼성물산과 ‘비공개협약’을 한 사실이 ‘국제중재판정부’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2022년 4월 대법원은 매수청구가격 산정 기산일을 ‘합병 이사회 전날(2015년 5월)’이 아니라 ‘제일모직 상장 전날(2014년 12월)’이 합리적이라고 최종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매수청구 가격이 조정되고 엘리엇은 매수가격 조정 차액 720억원을 받아갔다. 주식매수청구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 소액 투자자들은 ‘합법적으로’ 매수청구 가격 차액 보상을 받지 못했다. 요즘 유행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재용 회장 경영승계 과정에서 난마처럼 얽혀 한국 정부와 사법당국은 해외 투자자들 소송에 대응하며 막대한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또 패소할 경우 천문학적으로 추산되는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국민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 한국 법원에서 정부(검찰)의 승소가 해외 중재판정부에서는 한국 정부(법무부)의 패소 원인이 되는 상황이다. 거열형 형틀에 매달린 상앙이 떠오른다. 거열형이 집행된 후 치러야 할 2000여억원에 달하는 배상금과 법적 비용은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나? 청구나 할 수 있을까?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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