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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 위험한 상상]③ M&A 승부사 임종룡 회장은 왜 무기력해졌나

Numbers 2023. 11. 10. 16:20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사진=우리금융그룹)


NH농협금융의 핵심 계열사이자 증권업계 자기자본 '빅5'인 NH투자증권(구 우리투자증권)을 만든 주인공은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다. 2014년 당시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은 매물로 나온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직접 진두지휘해 KB금융그룹을 이겼고, NH투자증권을 증권업계 1위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엘리트 관료'로만 여겨졌던 임 회장의 이미지가 '유능한 CEO'로 바뀐 건 이 업적이 결정적이었다.

2023년의 임종룡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전해 그룹에 없는 증권사를 다시 채워넣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그때와 지금 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자못 다르다. 10여년전 M&A시장에 보여줬던 '야성'이 보이질 않는다. 당시 금융당국의 두터운 신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푸시'도 뚜렷하지 않다. 그룹 임원은 증권사 인수가 우선순위라면서 갑자기 상상인저축은행을 거론한다. 

현재 우리금융그룹의 M&A 전략은 우리은행이라는 든든한 자본공급책을 가지고도 주도적인 딜 메이커로 행동하기보다는 '떨어지는 감' 줍는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최근 3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인수 검토 대상으로 밝힌 상상인저축은행 측에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선 '언론플레이'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상상인저축은행이 매물로 나오기 위해선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인정돼 금융위원회로부터 매각 명령이 떨어져야 하는 선제조건이 있다. 상상인 측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이 이러한 정책 변동성 때문이라면 컨콜에서 언급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우리금융이 좌우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인수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상상인 인수 검토 발언으로 우리금융이 얻은 '무형의 효과'는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향후 상상인 매각 결정 시 인수전에서 우리금융보다 자본력이 밀리는 잠재적 경쟁자들을 미리 배척할 수 있고, 증권사 M&A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고도 '비금융 경쟁력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사 M&A가 길어질수록 가치 손실을 감내한 기존 우리종합금융(우리종금)과 우리벤처파트너스(우벤파) 주주에게는 더욱 뼈아프다. 우리금융은 상장사인 우리종금과 우벤파의 기존 주식을 폐지하고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와 기업가치 제고 등을 목적으로 들었다. 우벤파 1주당 가치를 공모가(5800원)의 절반도 안 되는 2657원으로 책정하고 그 가치에 해당하는 액수를 우리금융 신주로 교환해줬다.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종금과 우벤파 주식교환을 위해 3247만주(4.46%)를 새로 발행하면서 주당순이익(EPS)을 희석시켜 결과적으로 주가 부양에 부담을 줬다. 올 3분기 우리종금의 순이익은 184억원, 우벤파의 경우 42억원으로 아직까지 은행 위주의 수익구조를 전환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완전자회사 편입에 찬성한 주주들은 우리금융의 신주 발행에 따라 높아진 자본여력을 활용해 증권사를 합병하고 종금사업을 겸영하는 청사진을 통해 주가가 부양되길 원하고 있다. 이는 우리금융지주의 기존 주주들도 원하는 바다. IBK기업은행이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을 추월하는 등 저평가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 자본유치를 더욱 어렵게 해 타 금융지주와 자본싸움 경쟁력을 낮춘다. 3~4위 경쟁을 하던 하나금융지주는 2위 쟁탈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 같은 전후사정을 고려하면 우리금융지주가 증권사 M&A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저축은행 인수를 띄우는 모습은 저평가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금융은 일부 증권사 오너 측에 인수의향을 전달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적정한 매물이 있으면 인수할 계획"이라는 극히 안전한 기조만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인수가에 미련을 두는 것이다.

임종룡 회장이 2016년 금융위원장 시절 우리금융지주의 과점주주 체제를 만든 것이 우리금융 M&A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정부는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IMM PE,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등 7곳에 우리은행 지분 29.75%를 매각했다. 이로 인해 우리금융은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에 한국투자증권과 키움증권 측 인사를 두고 있다.

우리금융이 증권사 M&A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릴 경우 '잠재적 경쟁업체' 출신인 사외이사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부결 가능성 또한 감수해야 한다는 게 현실적 해석이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9년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추천한 한 사외이사에 대해 "현대차와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는 경쟁사로 잠재적인 이해상충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 바 있다.

현재 우리금융은 전략적 역량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받고 있다. 최근 잇따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쟁사를 저격하고, 자기희망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지속 발표하는 것이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세간에서는 임종룡 회장이 올 초 취임하면서 우리금융 주요 책임자들을 '물갈이'했지만, 새로 임명된 인물들도 은행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평가 역시 횡행하고 있다.

강승혁 기자 ks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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