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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11번가 떠안은 큰 손들, 묘수있을까?

Numbers_ 2023. 12. 6. 19:14

 

11번가의 성장에 베팅한 재무적 투자자(FI)들이 길을 잃게 됐다. 아마존을 만들겠다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SK스퀘어가 기업가치가 떨어진 11번가를 이른바 ‘손절’하면서, FI들이 고스란히 이를 떠안게 됐다. FI들은 이커머스 업황 악화로 당분간 11번가 출구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SK스퀘어는 11번가의 최대주주다. 보유 지분율은 80.26%다. 나머지 중 18.18%는 국민연금, MG새마을금고, 그리고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가 가지고 있다. 

FI들이 11번가의 지분을 취득한건 지난 2018년 6월이다. 11번가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기업가치를 2조5000억원으로 책정, 5000억원의 자금을 베팅했다. 국민연금 3500억원, 새마을금고 500억원이다. H&Q코리아는 3호 블라인드 펀드로 1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컨소시엄은 여러가지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핵심 조건은 ‘5년 내 기업공개(IPO)’였다. IPO는 기관투자자들의 핵심 출구전략으로 여겨졌다. 

기업공개가 무산될 경우 컨소시엄이 행사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Drag along, 동반매도권)’과 SK의 콜옵션(Call Option)도 계약서에 명시했다. 

드래그얼롱이란 계약이 무산될 경우 투자자가 최대주주의 지분까지 모두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권리다. 콜옵션은 최대주주가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다. 

IB 업계에 콜옵션이 행사되리라는 ‘암묵적룰’이 작동했는데, 그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기관투자자가 참여하는 국내 사모펀드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취득해야 하고 △이를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며 △차입은 재산의 10% 수준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풋옵션(Put Option)을 행사할 수 없다. 풋옵션은 투자한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한이다. 

PEF 업계는 풋옵션 행사로 투자 위험을 줄여왔다. 2012년 정부 규제로 풋옵션 행사가 금지되자 PEF 업계는 드래그얼롱과 콜옵션이 합성된 ‘콜앤드래그(call and drag)’를 활용했다. 콜앤드래그가 기관투자자의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장치로 풋옵션을 대체한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콜옵션 행사다. 지분매각이 아니다. 지분 매각은 콜옵션을 강제하는 수단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IPO가 무산되면 SK가 11번가의 지분을 되살 것이라고 업계가 ‘신뢰한’ 이유다.

이커머스 시장의 업황 악화로 11번가의 몸값은 5년 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1번가는 경쟁에 밀려 2020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내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11번가 부진의 가장 큰 책임이 SK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가운데 IPO가 무산되자 SK스퀘어는 이사회결의를 통해 11번가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FI의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장치가 되레 FI에게 위험을 떠안기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SK스퀘어의 콜옵션 포기를 두고 ‘신뢰를 저버린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이상 인수합병(M&A) 계약서에 ‘콜앤드래그’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 콜옵션 행사 포기로 향후 투자금을 유치하기 어렵게 됐다"며 "평판과 신뢰가 중요한 IB업계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FI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이다. 우선 SK스퀘어의 콜옵션 포기에 대해서는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SK스퀘어가 매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료 공개를 거부하거나 매도를 방해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다. 

국내 대형 로펌 소속의 M&A 전문 변호사는 “SK스퀘어는 실사 과정에서 자료 요청에 성실히 협조해 FI가 11번가를 매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SK스퀘어가 이같은 요청에 불성실하게 대응해 매각이 어려워 지거나, 적극적으로 매각을 방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FI들은 SK스퀘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가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이다. 지난 2011년 국내 사모펀드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는 미래에셋PE와 하나금융투자PE 등 FI들과 DICC 지분 20%를 3800억원에 인수했다. 두산그룹 측은 5년 후 IPO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FI들은 드래그얼롱 조항을 발동해 매각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이에 두산그룹이 매각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자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두산 측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두산 측의 불성실 책임으로 매각에 차질을 빚었다며 FI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올 4월 파기환송 선고를 내리면서 FI 패소로 종결됐다. 결국 FI들은 당초 지분 확보에 투입된 금액보다 750억원 적은 3050억원에 지분을 매각했다. 

SK스퀘어가 향후 11번가 매각에 적극 협조할 지는 장담이 어렵다. IB업계 관계자는 “FI가 SK스퀘어에 11번가 운영에 대해 여러가지를 건의했지만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FI들의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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