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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ESG 경영 외면한 남양유업의 운명

Numbers_ 2024. 1. 15. 09:22

출처=남양유업 홈페이지.

 

대법원 주식양도소송 최종판결로 남양유업 경영권이 60년만에 사모펀드 한앤코(Hahn & Co.)로 넘어간다. ‘굶는 아이들에게 우리 분유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1964년 창업한 남양유업은 전후 경제개발 연대 베이비붐으로 급성장하는 유아식 시장과 유가공업계에서 경쟁사 매일유업 보다 기업가치를 월등히 높게 인정 받으며 승승장구해온 회사다. 2013년 5월 7일 대리점주 갑질 논란과 연이어 터진 각종 구설수 등 평판리스크에 노출되기 전까지 업계 상장회사 최강자로 굴림해 왔다. 이렇게 앞서서 잘나가던 회사가 10여년만에 기업가치가 곤두박질해 경쟁사에 밀리고 급기야 대주주가 바뀌는 어려운 지경에 몰린 연유는 뭘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양유업 대주주 일가의 경영행태를 되짚어보면 경영권이 바뀌는 것이 사필귀정이고 소액주주나 다른 이해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평가다.

2030년부터 모든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정보공개 하게 될 ‘ESG 경영’ 기준으로 보면 남양유업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최하 수준에 가까운 경영을 했다. 한국ESG기준원(KCGS)이 평가한 2023년 남양유업 ESG 통합평가 등급은 ‘취약’ 수준을 간신히 면한 ‘B’등급(환경 B+, 사회 A, 지배구조 C)이다. 2022년 취약 수준인 ‘C’ 등급 보다는 소폭 개선은 되었지만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갑질 논란 등 구설수가 잦아들면서 사회적 가치부문은 다소 회복됐다. 그러나 주식양도소송 등 경영 불안 지속으로 지배구조 부문은 여전히 ‘C’ 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경쟁사 매일유업은 ESG 통합평가 ‘A’ 등급(환경 A, 사회 A+, 지배구조 A)을 받아 대조를 보였다. 이러한 차이는 재무적 성과와 시장 투자자들 평가로 정확히 반영되고 있다.

2013년 4월 30일 115만 8200원에 거래되던 남양유업 주가는 그 해 5월 소위 ‘대리점주 갑질’ 논란을 시작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본격화되면서 하락하기 시작했다. 기업경영에 대한 시장투자자 평가지표인 시가총액이 경쟁사 매일유업에 뒤집어진 시점도 대리점주 갑질 소동 직후인 2013년 5월 8일이다. 2011년 한 때 4500억원 이상 우위를 보이는 등 상장 이후 한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던 남양유업 시가총액이 매일유업에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뒤집어진 시가총액은 남양유업 경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고 그 기간도 길어지더니 2015년 11월 이후부터 2023년 12월까지 8여년에 걸쳐 장기간 지속됐다. 그러다가 한앤코 최종 승소 대법원 판결을 앞둔 2023년 12월 21일 이후 다시 남양유업 시가총액이 매일유업을 앞서기 시작했다.

남양유업 절대주가도 갑질 논란 1년 반 뒤인 2014년 12월 19일 59만 9480원으로 2013년 4월 30일 고가 대비 48.2% 하락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증시급락 여파와 ‘불가리스 허위정보’ 논란을 거치며 2020년 9월 24일 25만 35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2021년 5월 27일 홍원식 회장 일가 대주주 지분(52.63%, 3072억원) 매각 소식이 전해진 후 상승 반전되어 7월 1일 75만 5564원까지 치솟았다. 주가 급등으로 홍원식 회장이 넘기기로 계약한 가격 82만원에 근접해오자 마음이 바뀌었고 최근까지 진실공방과 소송이 이어지면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결국 남양유업 오너 일가는 경영권, 경제적 실익, 명예 모두를 잃고 말았다.

우유, 분유, 치즈 등 남양유업 비지니스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축산 및 유가공업은 환경오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배출되는 전세계 온실가스 510억톤의 19%가 ‘기르고 재배하는 일’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면서 안전한 미래 먹거리 개발 투자를 위해 남양유업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1983년부터 시작한 ‘임신육아교실’은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남양유업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그런데, 아이들 분유 팔아서 돈 버는 남양유업이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정작 자기회사 여직원들의 비정규직 전환을 강요했다는 사실에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율배반적인 경영을 한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불안감이 고조되고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자사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있다는 허위과장 연구결과를 발표해 식품, 특히 유아식품업의 중요한 자산인 소비자 ‘신뢰’를 잃었다. 저조한 경영실적과 기업경쟁력 저하를 경쟁사 허위 비방 댓글 조작으로 만회하려는 불공정 행위가 대주주인 홍원식 회장 지시로 밝혀져 2021년 9월 처벌받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2020년 이후 3년 연속 매년 700억~800억원 이상 영업이익 적자 결산을 했고, 2023년 3분기 누적으로 280억원 적자를 보이고 있어 2023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2020년 1조원이 넘었던 자산은 2023년 3분기말 8327억원으로 감소하고, 이익잉여금이 줄어 자본도 2020년 대비 1545억원 줄어든 7187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경영의 정점에 52.63% 지분으로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홍원식 회장 대주주 일가가 있었다. 여러 평판리스크와 소송 지속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하고 있지만 이를 견제할 이사회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 ESG 3가지 평가영역은 합리적 상식을 가진 경영자라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챙겨야 할 사항들이다. 사실 ESG 경영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경영활동에서 당연히 풀어가야 할 과제들인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비재무적 영역의 경영리스크들이 재무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강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2024년 5월말까지 상장회사는 지배구조관련 공시자료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하고 불공정 공시 여부를 감시 받는다. 향후 상장사 ESG 공시가 의무화되는 2030년부터는 기업 발행채권 인수 여부나 리스크 프리미엄 수준도 ESG 실행 성과 영향을 받게 되고 단기적 재무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ESG가 향후 기업 구조조정 프레임의 하나로 작동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도 전에 남양유업의 경영권이 넘어간 것은 시장에서 이미 ESG 프레임이 작동한 것으로 이해된다. ESG 경영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실질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투자금 ‘회수기간’을 중요시하는 외국계 LP들은 남양유업의 경영권 이행과 정상화 지연에 따른 5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기업 비즈니스의 본질가치는 괜찮은데 경영진이 무능해서 시장가치가 일시적으로 훼손되어 있는 회사를 사모펀드들은 좋아한다. 그런 회사를 사서 정상화해 되팔아 돈을 버는 것이 통상적인 차입인수 사모펀드(Leveraged Buyout Fund)들의 주요 비지니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양유업이 사모펀드 관심대상 리스트에 올랐을 것이고 홍원식 회장이 타겟이 된 것이다. 저출산 등 변화된 시장환경을 고답적 경영방식으로 대응하는 성장모델은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고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본업에 집중하고 경쟁력 향상에 힘써도 부족할 상황에 회사명을 뺀 신제품 출시로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대응하고, 대주주 경영판단 실수와 욕심 채우기 뒤치닥거리에 소중한 시간과 회사자원을 낭비한 것이다.

대법원 최종판결로 주식양도 절차만을 남기고 있지만 여전히 아직 끝나지 않은 소송 등으로 경영혼란이 진행중이다. 사모펀드 한앤코 뿐만 아니라 남양유업 소액주식투자자, 대리점주, 소비자, 종업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지배구조 안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회복시키고 경영 정상화를 만들어갈 유능한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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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ESG 경영 외면한 남양유업의 운명

대법원 주식양도소송 최종판결로 남양유업 경영권이 60년만에 사모펀드 한앤코(Hahn & Co.)로 넘어간다. ‘굶는 아이들에게 우리 분유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1964년 창업한 남양유업은 전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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