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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용병이 금융지주를 구할 수 있을까?

Numbers 2024. 1. 17. 08:21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허정수 전 KB금융지주 CFO


2023년 12월 ‘은행지주, 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 TFT 최종안이 확정되어 공개됐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앞으로 ESG경영관련 지배구조 부분 공시의무가 부과되기 때문에 참고하여 내부운용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하는 데 필요한 ‘주옥’ 같은 내용들이 많이 제시됐다. 그동안 금융지주나 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들은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CEO 교체기 때마다 수많은 잡음과 불미스러운 일들이 반복되곤 했다. 인사 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떠돌고 사람들 관심이 높은 이유는 그만큼 각자 상상하는 시나리오와 다른 의외의 결과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투명성과 공정성 시비가 양산되고 최종 선임된 후보자는 물론 레이스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지주나 은행이 주인이 없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엄연히 주식회사, 특히, 상장회사인 경우 회사의 미래성장 가능성을 믿고 주식을 매입한 수 많은 투자자들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누가 뭐라해도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 금융지주와 은행에서는 주주들이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관행이 있다. 은행의 특수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금융지주나 은행의 주식 한주도 없는 당국이 법과 ‘책무구도’에 정해진 범위를 넘나들며 관하여는 일이 많았다. 건전성과 적법성 감독 등 본연의 권한을 넘어 지나치게 세밀한 곳까지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 금융지주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마치 기말시험을 앞두고 날치기 밤샘 준비로 시험 치루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발표된 베스트 프랙티스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듯이 CEO 선임은 단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수년간에 걸친 후보자 육성계획에 의해 진행되는 일련의 승계프로그램 과정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국내 다수의 금융사들, 특히, KB금융 등 과거 지배구조 불안정으로 몇 차례 씩 홍역을 치른 경험을 가진 회사일수록 주주와 회사가치 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시비를 염두에 두고 제도와 프로세스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다.

이번 발표된 베스트 프랙티스 내용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원칙 13’(외부후보와 내부후보간 형평성 확보)이다. 내부 후보자에게 부회장직 등을 부여하는 육성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 외부후보자에게도 ‘비상근’ 직위를 부여하고 내부 역량개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가이드하고 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번만 곱씹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회사 발전에 꼭 필요한 인재는 회사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 영역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외부인사 영입은 최고경영자 선발단계가 아니라 적어도 C-레벨의 전문가 영입을 통해 내부인력풀로 합류시켜 육성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개인의 기질과 품성 등 쉽게 바뀌지 않는 선천적 요소가 아니면 경영자로서 대부분의 역량은 일과 경험을 통해 육성된다. 편견과 선입견을 최소화하면 사람을 보는 눈은 대체로 수렴하게 된다. 경이적인 성과를 만든 일은 대부분 직간접적인 조력자가 있다. 성공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하는 과정을 체크하는 방법이 다면평가이다. 같이 일을 해봐야 그 사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성공한 결과만으로 그 사람을 알기는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최고경영자 후보풀 선정시 조직 내부에서 함께 일을 하고 성과를 낸 사람이 가장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된 상식이다. 가장 좋은 인재양성 방법은 일을 맡기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부회장, 부문장, 본부장 등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걸맞는 일을 주어 성과를 내고 경험하게 해야 인재는 육성된다.

외부인사에게 비상근직을 주고 내부회의에 참여할 기회를 줘야 불공평이 사라진다는 논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주주의 위임을 받은 이사회의 판단에 따라 내부육성 인재 보다 외부에서 실력이 검증된 인사를 초빙하는 경우는 검증 절차와 방법이 달라야 한다. 내부와 외부는 엄연히 시장이 다른 것이다. 외부인력은 외부 시장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외부인재는 1차적으로 내부인력풀을 평가할 비교평가 대상이다. 내부 경영자후보자군을 선발하여 평가, 검증, 육성하는 벤치마크 대상으로 외부인재 풀을 관리하고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역량과 성과가 확인되는 외부인재가 있고 영입 필요 판단이 서면 이사회가 나서 적극 모셔올 것이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훌륭한 미래 경영자 육성은 현직 CEO 뿐만 아니라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금융당국의 베스트 프랙티스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KB금융은 운용하던 부회장직을 없애 버렸다. 글로벌, IT, 보험 등 지주 차원에서 집중해 독립적으로 챙길 부분은 부문장직을 운용하고 나머지 비지니스 영역은 각 계열사 본업으로 책임지도록 했다. 하나금융지주도 당국 발표 직후 부회장직을 버렸다. 역시 다른 직함으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인재는 직이 아니라 일을 통해 육성되는 것이다.

부회장직이 후계자 승계프로그램 운영과정에서 외부 인재에게 불평등을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시각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이다. 내부 후보자가 그룹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유수의 글로벌기업은 대부분 후계자 승계프로그램을 두고 있다. 적어도 3~5년 전부터 후보명단을 만들고 여러 사업분야 경영을 맡기고 검증한다.

기업이 성장 한계에 봉착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사회는 어떤 경영자에게 돌파 임무를 맡길지 항상 고민한다. 출신의 내부 외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쌓인 숙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할 지가 선발기준이다. 외부 시장에서 검증된 경험과 역량이 내부 후보에 비해 확실한 차별적 경쟁력을 가진 외부 후보는 불평등을 논할 이유가 없다. 이사회 진용이 전문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고 운영의 독립성이 존중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KT, 포스코, KT&G 등의 최근 CEO 선임 소란이 주주와 기업가치 증진, 나아가 국민경제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짐 콜린스 연구(Good to Great) 에 의하면 킴벌리 클라크, 웰스 파고, 필립 모리스 등 ‘좋은 회사’를 세계적인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CEO 11명 중 10명은 내부 출신이었고 그 중 3명은 가족 세습경영자였다. 오히려 저명한 외부인사를 용병으로 영입하여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어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결론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금융권과 경제 대혼란기에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사장 출신으로 초대 통합 KB국민은행을 지낸 고 김정태 은행장이 금융권에서 외부영입으로 성공한 대표적 CEO로 기억된다. 용병이 나라를 구한 적이 있던가?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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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수 전 KB금융지주 CFO2023년 12월 ‘은행지주, 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 TFT 최종안이 확정되어 공개됐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앞으로 ESG경영관련 지배구조 부분 공시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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