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약 바이오 회사 두 곳이 비슷한 시기에 유의미한 대규모 자본거래를 했다. 한미사이언스와 OCI, 레고켐바이오와 오리온이다. 전혀 다른 이종업종 회사들간 이루어진 이례적 거래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시장 투자자들 판단은 아직 유보적 입장인 것 같다. 다만 발표 직후 시장 반응은 투자를 받은 제약 바이오 회사는 상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자금을 투자하는 회사는 다소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는 주식 맞교환을 통해 지분을 상호 소유하고 차액은 정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OCI홀딩스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가현문화재단 지분 9.74%를 매입하고, 송 회장과 그의 딸 임주현 실장이 보유한 구주 8.87%는 현물출자를 받았다. 거래대금은 주당 3만 7300원으로 총 5303억원이다. 제3자 배정 신주발행 물량 8.42% 인수가액 2400억원을 포함해 총 7703억원으로 지분 27.03%를 취득하며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의 대주주가 된다. 한미사이언스 송영숙 회장 측은 OCI홀딩스 지분 10.36%(2527억원)를 제3자 배정 신주발행을 통해 현물출자를 받아 이우현 회장(5.87%)에 앞선 최대주주가 됐다. OCI홀딩스는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거의 시장가격으로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된 셈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운영자금과 채무상환 용도로 24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고, 송영숙 회장도 약 2776억원 정도의 현금을 마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오리온도 홍콩 소재 해외자회사인 팬오리온을 통해 레고켐바이오 창업자 김용주 회장측 구주 3.85%(787억원)와 제3자 배정 신주발행 21.88%(4698억원) 등 지분 25.73% (5485억원)를 인수해 레고켐바이오의 최대주주가 됐다.
OCI홀딩스 매출 포트폴리오는 태양광 폴리실리콘 37%, 카본케미컬 16% 등 주력이 화학소재 제조회사이고, 오리온은 비스킷, 스낵과 함께 초코파이로 유명한 식료품회사이다. OCI홀딩스, 오리온 모두 2023년 3분기말 누적 당기순이익이 7170억원, 2708억원으로 돈도 잘 벌고 현금흐름도 양호한 튼실한 재무구조를 가진 회사들이다.
현금흐름(Cash Flow)은 양호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과 수익 포트폴리오 다변화 니즈가 큰 회사들이 주로 추진하는 전략이 인수합병이다. 바이오 제약사들은 신약개발 투자기간이 길고, R&D 소요 자금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투자자금 확보가 항상 중요한 경영 화두이다. 제약사 신약개발이 마지막 상용화까지 이르지 못하고 기술수출 형태로 해외 거대기업들에게 자주 팔려 나가는 이유가 상용화까지 견딜 수 있는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거나 해외 판매망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두 제약사와 비제약 투자기업간 거래도 비슷한 연유로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이다.
오리온과 레고켐바이오의 거래는 오리온의 바이오사업을 통한 성장전략과 레고켐바이오의 R&D 자금조달 목적의 순수한 비즈니스 관점의 의기투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의 자본거래는 비즈니스 본업 외의 또다른 목적이 더 컸던 것 같다. 당장 한미그룹 오너가 가족간 경영권을 둘러싼 소송이 시작된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된다. 통상적인 비즈니스 관점의 자본거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두 거래 모두 돈이 필요한 것은 동일하지만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한미약품 창업자 고 임성기 회장 유산을 가족들이 넘겨 받으면서 발생한 상속세가 문제였다. 준비 안된 상황에서 거액의 상속세는 자연스럽게 지배구조 불안정을 가져온다. 한미사이언스 오너 입장에서 경영권을 지키면서 제약 바이오 본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금조달 방안으로 이번 거래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18년 제약 바이오 섹터를 전략적인 미래 먹거리로 선택한 OCI홀딩스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2022년 2월 부광약품을 인수했다. 하지만 OCI홀딩스가 부광약품을 인수한 후 저조한 경영실적이 지속되고 있어 제약바이오 부문에 대한 OCI의 경영능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OCI 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을 협업해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 낼 지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미사이언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양호한 경영성과를 보여온 한미약품그룹이 바이오사업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OCI홀딩스와 통합하면서 오히려 역시너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OCI홀딩스 주주들은 중간지주 형태로 한미사이언스가 편입되는 지배구조를 생각하며 불확실하고 회수기간이 긴 한미사이언스에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인수합병 후 관리과정(PMI, Post Merger Integration)에서 지배구조의 안정적 운용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인수합병이 아니라 법률적 구속력이 약한 ‘통합’으로 한다는 것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또다른 분란과 고민거리를 만들 수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표적항암치료 방법인 항체약물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 기술을 자체 개발한 전문 바이오기업이다. 오리온 역시 2020년 바이오사업을 미래 핵심성장 분야로 판단하고 중국 현지합작법인을 설립해 해외진출에도 대비해 왔다. 해외진출 대상시장도 중국 뿐만 아니라 동남아권을 포함, 상당히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다. 국내에서는 바이오사업 기반구축을 위해 다수의 벤처 바이오회사 초기투자와 업무협약 등을 통해 관련사업 확대를 위한 저변 확충을 해왔다. 레고켐바이오 지분 25.73%(5485억원) 인수는 오리온 총자산의 16.27%에 달하는 대규모 자본거래이다. 그만큼 바이오사업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이다. 그럼에도 매년 400억~500억원 이상의 레고켐바이오 당기순손실이 오리온 실적에 반영되고 중장기적인 대규모 R&D 투자도 걱정되기 때문에 당장은 오리온의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쪽에 투자자들이 베팅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인수합병 성패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인수 합병은 대부분 대형 제약사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자금력이 인수합병의 동력이라는 의미이다. 한미사이언스 오너 가족간 소송 후폭풍을 논외로 하더라도 중간지주 형태로 운영될 ‘통합’ 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관리는 과거 LG그룹과 GS그룹 못지 않게 매우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오리온의 제약 바이오부문 성패는 CJ 대상 등 국내 비슷한 처지의 식품회사들의 바이오산업 진출 행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이 투자대상 회사를 고를 때 ‘ 이 회사의 경영진과 정말 동업하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아니오’ 라는 판단이 서면 즉시 인수 작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잘 아는 것만 투자하고 믿을 만한 경영자를 보고 지분을 사서 경영을 계속 맡긴다’는 버핏의 인수합병 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국내 기업 인수 뿐 아니라 정보가 부족한 해외진출시에는 더더욱 중요한 체크 포인트이다. OCI와 오리온은 이번 인수 후에도 현 CEO에게 경영을 계속 맡기고 동업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진정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선택한 동업이고, 성공하길 바란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계속 결정해야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결정도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은 대체로 민주적이지 않다. 구조적으로 경영은 독재적 속성을 지닌다. 1인 1표가 작동되는 민주주의 정치구조와 다르다. 1원 1표 원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권력의 세기는 돈의 크기에 비례한다. 시장은 권력 행사결과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확인해 가는 나침반이다. 두 제약회사의 이색적인 동업을 이제 시장이 평가하게 될 것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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