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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이복현 금감원장과 ‘하늘 그물’

Numbers_ 2024. 4. 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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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이복현 금감원장과 ‘하늘 그물’

공매도 금지 상생 배상 등 총선용 정책 주도‘금융 대통령’ 별칭…선거결과에 책임 느껴야금융위 금감원 위상·역할 제자리 찾는 계기로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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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상생 배상 등 총선용 정책 주도
‘금융 대통령’ 별칭…선거결과에 책임 느껴야
금융위 금감원 위상·역할 제자리 찾는 계기로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이라는 그물은 넓고도 넓어 성기고 엉성한 듯해도 어느 하나 놓치는 게 없습니다. 노자 ‘도덕경’ 73장에 나오는 명문장입니다. 때로는 과연 ‘천도(天道)'라는 게 있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인(因)은 결국 자기 스스로 과(果)를 받는다는 우리 인생의 인과율 또는 인과응보의 철칙을 말해줍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은 요즘 같은 큰 선거가 끝났을 때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민심이라는 ‘하늘 그물’이 보기에는 성기고 엉성한 듯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냉혹하게 판정을 내리는지 두려움조차 느낍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의 참패로 끝난 22대 총선 결과를 놓고 국무회의에서 사과했습니다.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으며,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더 낮은 자세로 더 많이 소통하고 경청하겠다”고 했습니다. 최일선에서 총선을 지휘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여러 차례 사과하고 반성했습니다.

윤 대통령이나 한 전 비대위원장 외에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인과율의 철칙을 되새겨야 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금융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입니다. 

이 원장은 검사 시절부터 한 전 위원장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큰 힘을 가진 금융감독기관의 수장입니다.

이 원장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 온몸을 던졌습니다.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겼다면 윤 대통령, 한 전 위원장과 함께 1등 공신이 됐을 것입니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에서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다수인 개미 투자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데도 밀어붙였습니다.

이 원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한편에서 보면 선거용 정책입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기업 자율로 추진돼야 함에도 정부 당국이 주도하고 세법 개정을 통해 세제 혜택까지 부여하겠답니다.

총선용 정책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말의 2조원 상생금융 지원과 지난달 선거가 임박해 단행된 2조원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은행권을 향해 돈잔치, 이자 장사 등의 비판을 이어가더니 드디어 상생금융을 빌미로 2조원을 내도록 했습니다. 뒤이어 투자자 책임 원칙을 내세워 거부하는 은행권을 향해 2조원의 ELS 손실 배상을 강제했습니다. 상생금융 2조원도, ELS 손실배상 2조원도 모두 이 원장이 주도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한민국에는 두 사람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 국군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시장에서 ‘금융 대통령’으로 불린 이 원장입니다. 이 원장은 금융 대통령으로 칭해졌지만 그의 영향력은 금융 분야에 머물지 않았고 경제 전 분야를 망라해 광폭 행보를 보였습니다. 태영건설 문제 해결이나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에서 나름 대로 성과를 거둔 것은 이 원장의 노력에 힘입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습니다. 시장 원칙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밀어붙였고 여기에 대한 평가가 여당의 총선 참패로 나타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이나 한 전 위원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윤석열 정부에서 사실상 경제 대통령 역할을 했던 이 원장도 선거 결과에 일부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총선 참패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이관섭 실장 등 대통령실 수석들도 사표를 제출했음을 참고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바로잡아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역할 정립입니다. 금융위는 금융정책 기능을 총괄하며 금감원을 감독하는 기관입니다.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도 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이 원장 취임 이후 지난 2년간 이 같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역할이 뒤죽박죽됐습니다. 이로 인해 정책 혼선과 갈등도 많았습니다. 이제 바로잡아야 합니다.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을 앞두고 이 원장의 영전설이 파다하지만 적절한지 의문이 듭니다. 하늘 그물은 보기에는 엉성해도 하나도 놓치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이 원장이 ‘천망회회 소이불실’의 이치를 곱씹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