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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SK케미칼]① 공들였던 제약사업 매각 추진 이유는?

Numbers 2023. 11. 7. 08:41
SK케미칼의 선제적인 사업 개편을 파헤쳐 봅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SK케미칼 사옥 조감도.(사진=SK케미칼)

 
‘제약사업 진출은 정밀화학기업으로 변신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었다. 1987년 삼신제약 영업권 인수 후 1988년 선보제약 설립, 1989년 생명과학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돌입, 기넥신·트라스트 개발에 이어 1999년에는 최초의 국산 신약이자 세계 최초 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 선플라 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제약사 102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SK케미칼의 50년사에서 발췌한 제약사업부의 업적이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SK케미칼은 대한민국 제약사의 중심축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SK케미칼의 행보는 선대회장의 제약사업에 대한 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단물 다 빠진' SK케미칼 제약사업부 매각을 추진, 그룹에서 제약사업을 제외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이다.

SK케미칼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와 제약사업부 매각을 검토 중이다. SK케미칼은 “본 계약 체결 전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해 당사자간 MOU를 체결했으며, 당사자 간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예상 매각가는 약 6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를 인수할 당시 가격인 1조3000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제약사업, 최종현 선대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SK케미칼 제약사업부는 최 선대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경영 철학이 녹아든 사업부다. SK그룹이 제약사업을 고민할 당시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업종에 대기업 진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 에너지화학을 사업 축으로 성장한 SK그룹은 ‘중소기업은 있어도 중소기업 업종은 없다’고 판단,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최 선대회장은 단순히 제약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사업 방향성을 가늠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임했다. 1983년 3월 최종현 선대회장이 정밀화학 진출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한약에서 특별한 요소를 추출해서 생약을 만들어 판다면 상당한 마진이 있을 것으로 본다”라며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9년 경기도 수원에 생명과학연구소를 확대 개편한 선경제약은 가장 먼저 천연물 의약품 연구에 착수했다. 1992년 은행잎 추출물을 바탕으로 개발한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을 개발했으며 이후 2001년에는 국내 천연물 신약 1호인 생약복합 관절염치료제 ‘조인스’ 개발에 성공했다. 

SK케미칼 제약사업부는 최 선대회장이 선견지명으로 아직까지 견고한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기넥신과 조인스는 개발된 지 20년 이상 지난 현재까지도 SK케미칼 제약사업부의 주요 제품이다. 조인스와 기넥신은 2022년 4분기 기준 각각 누적 매출액 5434억원, 5068억원을 달성했다.

SK케미칼은 2005년과 2006년에 SK제약(구 선경제약)과 동신제약을 합병하면서 국내 10위권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2022년 기준 SK케미칼이 제약바이오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액(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포함)은 약 7706억원으로 국내 제약사를 통틀어 10위권에 유지하고 있다. 

동신제약은 부천공장에서 백신제·혈장분획제제·항생제 등 필수의약품 생산에 주력하며 치료와 예방 의약품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온 회사다. SK케미칼의 동신제약 인수는 훗날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플라즈마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천연물 의약품과 화학의약품과 달리, 백신과 혈액제제는 국내에서 몇몇 기업만이 진입해있는 시장이다. 특히 국내 혈액제제 시장은 GC녹십자와 SK플라즈마가 양분한다. 안정적인 매출을 바탕으로 국내 10대 제약사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선플라 연구 당시 모습.(사진=SK케미칼)

 

최창원 부회장, 'SK바이오사이언스' 키우고 '제약사업부' 버렸다

 

이렇게 중요한 사업부를 매각한다는 의미는 SK케미칼에게 더 이상 제약사업이 중심 사업이 아닌, 주변 사업으로 전락했음을 말해준다. 최 선대회장이 작고한 이후,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선대가 남긴 유산을 가꾸기보다는 본인 주도 하에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의 의약품과 헬스케어 업종을 아우르며 토털 헬스케어 체계를 다져나가던 SK케미칼은 최 부회장의 지휘 아래 2010년대 중반부터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2008년 의료정보화 솔루션 기업인 이수유비케어(현 유비케어)를 인수해 헬스케어사업에 진출했던 SK케미칼은 2015년 12월 GC녹십자에 유비케어를 매각하면서 토털 헬스케어 사업에서 한 발 물러섰다. 당시 SK케미칼은 백신과 혈액제제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에 맞춰 SK케미칼은 백신사업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동신제약 출신 연구개발진과 GC녹십자에서 합류한 개발진 등을 아우르며 제품 개발에 공들였다. 2012년 경북 안동에 백신 공장 ‘L하우스’를 완공, SK케미칼은 이를 기점으로 백신 전문기업으로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2014년 국내 최초 3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허가, 2015년 세계 최초 4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허가, 2017년 대상포진백신 세계 2번째 허가, 2018년 수두백신 국내 2번째 허가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18년에는 사노피 파스퇴르와 세포배양 인플루엔자백신 생산 플랫폼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수두 백신인 '스카이바리셀라'를 국내 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2010년대 SK케미칼의 성과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물적 분할로 계승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 뒤에는 최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반면 기존의 천연물 신약과 화학의약품을 주로 하는 제약사업부는 입지가 좁아졌다. 신약 개발은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 이후 전무하다. 지난 3년간 SK케미칼 제약사업부가 임상을 진행한 건수는 총 4건에 불과하다.

2018년 94명이었던 SK케미칼 연구개발센터 인원은 2019년 초 20명으로 급감했다. 개발팀이 붕괴되다보니 신약개발이 가능할리 없다. 이에 SK케미칼 제약사업부는 이미 다른 제약상서 출시된 의약품을 카피한 제네릭의약품을 출시하거나 해외서 의약품을 도입해 파는데 그쳤다.

SK케미칼 또한 헐값에라도 SK케미칼 제약사업부를 팔겠다는 입장이다. SK케미칼은 제약사업부를 판 돈으로 그린케미칼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에 활용한다. SK케미칼은 플라스틱의 수거 및 선별, 재활용까지 ‘완결적 순환 체계 실현’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향후 폐플라스틱을 포함한 그린바이오 소재 산업에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내부에서도 SK케미칼 제약사업부가 향후 기대할 만한 발전 요소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전직 SK케미칼 관계자는 “최 부회장의 경영 방침으로 인해 (제약사업부) 연구 인력은 이미 다 떠났다"면서 "남은 생산 인력과 공장, 마케팅 인력만으로 구성된 기업에게 미래 성장 동력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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