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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사태] 큐텐, 왜 ‘적자·자본잠식 기업’ 줄줄이 샀나

Numbers_ 2024. 7. 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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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사태] 큐텐, 왜 ‘적자·자본잠식 기업’ 줄줄이 샀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QOO10)이 그간 인수한 회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 심화로 인해 적자 경영을 이어왔고 출혈 누적으로 재무가 악화된 기업이라는 점이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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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 큐텐 대표 /사진 제공 = 큐텐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QOO10)이 그간 인수한 회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 심화로 인해 적자 경영을 이어왔고 출혈 누적으로 재무가 악화된 기업이라는 점이다. 큐텐은 적자투성이인 이커머스 기업들에 어떤 매력을 느끼고 인수에 나섰던 것일까. 구영배 큐텐 대표가 그린 청사진 무엇이었을까.

/그래픽=박진화 기자

 

큐텐은 2022년 9월 티몬 인수를 시작으로 인터파크커머스(2023년 3월), 위메프(2023년 4월), 미국 위시(2024년 2월), AK몰(2024년 3월)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큐텐이 적자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을 두고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큐텐이 인수한 기업은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거나 순이익이 미비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사들이었기에 인수 이후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티몬만 해도 그간의 사업으로 막대한 손실액을 기록한 이커머스 기업이다. 티몬은 2022년 기준 영업손실 1527억원, 당기순손실 166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638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위메프 역시 1025억원의 영업손실, 882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적자 기업이다. 자본총계도 -2398억원을 기록하는 등 자본잠식 상태다. 인터파크 커머스도 지난해 157억원의 영업손실, 13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적자 기업이다.

큐텐이 이들 기업인수에 나선 것은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큐텐은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져올 수 있었다. 티몬과 위메프 기존 주주의 지분을 가져오는 대가로 큐텐의 주식과 채권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큐텐 싱가포르 법인 보통주 주주현황(자료=블로터)

 
이에 따라 현재 큐텐의 주주 명단에는 기존 티몬 주주였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의 재무적투자자(FI)가 자리하고 있다. KKR과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몬스터홀딩스는 큐텐의 2대 주주(25.65%)다. 위메프 주주였던 IMM인베스트먼트는 큐텐의 채권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추후에 큐텐은 회사를 상장시켜 FI 엑시트(투자금 회수)길을 열어준다는 담보로 이커머스 기업의 경영권을 가져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큐텐은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할 때 역시 주식 교환과 현금을 적절하게 섞어서 거래를 성사시켰다. 다만, 현재까지 매각 대금(약 1871억원) 가운데 1680억원 규모의 잔금을 납입하지 않은 상태다.

결론적으로 이들 기업 인수는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인 큐익스프레스(Qxpress Pte. Ltd.)에도 긍정적이었다. 적자 경영 중인 이커머스 업체를 연이어 인수해 글로벌 유통망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물리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물류업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큐텐 계열사가 늘어날수록 큐익스프레스 물류량도 함께 늘어났다. 티몬·위메프 인수 직후인 지난해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 매출은 810억원으로 전년(734억원) 대비 10% 증가했다.

모기업 큐텐이 연이어 이커머스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자 취급 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큐익스프레스의 몸값도 상승했다. 그간 상장 이후 예상 기업가치는 10억달러(약 1조3853억원) 등으로 거론돼 왔다.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의 재무 사정을 고려하면 상상도 못 할 기업가치다.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은 2023년 연간 기준 159억원 수준의 영업손실과 10억원의 순손실을 내고 있다. 손실이 누적돼 결손금은 525억원에 달한다. 자본총계는 -243억원으로 자본잠식상태다.

큐텐의 확장 경영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큐텐은 지난 2월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며 위시가 보유한 광범위한 글로벌 공급망과 큐텐의 물류를 결합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래액의 80%가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는 위시는 현지에서 '미국판 알리'로 불리는 이커머스 업체로 주로 초저가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큐텐은 위시 인수로 일본·대만·베트남·태국 등 동남아·동북아뿐만 아니라 유럽·미주까지 총 24개국에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큐텐의 사업 전략은 이커머스 기업을 인수해 국내 시장에서 더 많은 셀러를 확보하고 전 세계에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오픈마켓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 K-뷰티, K-푸드 등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국내 셀러들의 해외 판매를 도와 역직구 사업을 고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역직구는 해외 소비자가 국내 플랫폼 또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직접 상품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만년 적자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모기업 큐텐마저 곳간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만큼 티몬·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사태 등의 유동성 문제는 예견된 일이었다. 일부 언론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큐텐 역시 티몬 인수 직전인 2021년 한화 기준 948억원의 적자를 내는 기업이었다. 2019년, 2020년에도 각각 영업손실이 756억원, 1168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 전에도 적자였던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에게 인수된 후 재무 상태가 더 나빠졌다. 위메프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1025억원으로 1년 사이 적자 폭이 84% 증가했다. 티몬은 지난 4월 마감이었던 2023년 감사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큐텐은 왜 무리한 청사진을 꿈꿨을지 의문이 남는다. 큐텐 그룹의 욕심이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자본 인수합병(M&A)에 가까운 큐텐의 경영을 진두지휘한 건 구영배 대표다. 인터파크 출신인 구영배 대표는 1999년 지마켓을 설립한 뒤 2004년 지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이후 2009년 미국 이베이에 지마켓 주식을 5500억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지마켓 주식을 갖고 있던 구영배 대표는 715억원을 손에 쥐었다. 구 대표의 사례는 벤처기업 성공 신화 중 하나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를 통해 제2의 지마켓 신화를 꿈꾼 것으로 보고 있다. 큐텐의 공격적 인수로 큐익스프레스도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추후 상당한 투자금 회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해부터 나스닥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심사를 받고 있다. 나스닥 상장 추진 시점은 올해 10월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자체도 사실상 불확실해졌으며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큐텐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그룹 차원의 M&A와 펀딩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전략상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구영배 대표는 29일 입장문을 내고 “현재 큐텐은 양사 경영 정상화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룹 차원에서 펀딩과 M&A를 추진하고 있으며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큐익스프레스는 티몬·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사태에 대해 선을 긋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구 대표를 비롯한 큐텐 측이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이라는 목표 달성만을 위해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마크 리 큐익스프레스 신임 대표는 "큐텐 그룹 관계사의 정산 지연 사안과 큐익스프레스 사업은 직접적 관련은 없으며 그 영향도 매우 적은 상황"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