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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반격, 최윤범 회장의 '필승법' 시나리오는

Numbers 2024. 9. 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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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반격, 최윤범 회장의 '필승법' 시나리오는

고려아연 75년 동행을 의미하는 장 씨와 최 씨의 특별관계가 해소되면서 최윤범 회장이 사재를 활용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우선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최근 고려아연이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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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내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하루 전인 31일 개최한 사내 기념식에서 ‘새로운 미션’과 ‘핵심가치 5가지’를 발표하고 있다./사진 제공=고려아연


고려아연 75년 동행을 의미하는 장 씨와 최 씨의 특별관계가 해소되면서 최윤범 회장이 사재를 활용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우선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최근 고려아연이 지급한 배당금과 급여다.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내는 방법도 거론된다. 그러나 단기간 최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우군을 끌어오는 것이다. 유력한 우군으로 한국투자증권이 지목됐다. 

최 회장의 반격이 본격화 된 가운데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은 일단 추이를 관망하는 양상이다.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을 훌쩍 넘었지만 이를 상향 조정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윤범 회장 선택지 '배당·급여·주담대' 

 

현재 최 회장과 영풍은 고려아연 주식보유 상황을 각각 따로 보고하고 있다. 이달 12일 영풍을 비롯한 코리아써키트, 테라닉스 등 계열사와 장형진 고문 일가 등이 최 씨 일가와 장부상 특수관계인 선 긋기에 나서면서다. 앞으로 최 회장이 보고자인 경우 유중근 씨와 유미개발, 영풍정밀 등이 보유한 지분(총 15.65%) 변동에 대해서만 보고가 이뤄진다. 영풍도 같은 방식으로 공시하게 된다.  

자본시장법상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 동안 이에 응하는 것 외에 주식 취득이 금지된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지분구조상 모자 관계이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장 씨와 남이 된 최 회장은 얘기가 다르다.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공동 보유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특수관계인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개별적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가능하단 의미다. 

그렇다면 최 회장은 어떻게 주식 취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이런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오너일가의 묘안은 배당과 급여, 주식 매각 등이 있다. 부족하면 보유 주식을 담보로 융통하는 방법이 있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 유미개발, 케이잼에서 등기임원을 맡고 있다. 이 가운데 보수 지급액을 공시하는 곳은 고려아연 뿐이다. 최 회장은 올 상반기 고려아연에서 17억원의 보수를 챙겼다. 

또 최 회장 개인 소유 지분이 있는 계열사는 △고려아연(1.84%) △영풍(2.18%) △서린상사(0.73%) △영풍정밀(2.75%) △유미개발(8.77%) △서린정보기술(6.67%) △알란텀(0.10%) △켐코(4.09%) 등이다. 최 회장은 올들어 영풍정밀에서 3억원, 영풍에서 4억원, 고려아연에서 57억원 등 총 64억원의 배당금을 수취했다. 확인 가능한 금액만 따졌을 때 급여와 배당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은 8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지분 매각의 경우 MBK파트너스·영풍의 공개매수 대상인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을 제외하면 영풍으로 대상이 제한된다. 대부분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다. 영풍 지분 매각시 19일 종가 기준 약 2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고려아연 주가가 70만원대로 올라선 것을 감안할 때 유의미한 지분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주식을 담보로 맡길 시 최대 대출 한도는 담보물 가치의 70%이다. 최 회장의 영풍정밀, 고려아연 주식 가치는 2757억원(19일 종가 기준)이다. 이미 담보로 내놓은 고려아연 일부 주식을 제외하면 최대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약 1800억원이다. 이번 공개매수가 조단위 빅딜인 만큼 주식담보대출도 한계가 있다.   

 

한국투자증권 참전 가능성은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공개매수 기간의 말일까지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 철회 사유 중에는 '제3자에 의한 대항 공개매수'가 포함된다. 대항 공개매수는 공개매수 주주의 반대편에 선 주주가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자금력이 풍부한 백기사를 모으는 것이다. 유력 백기사로 한국투자증권이 거론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이 백기사 차원에서 도우려는 의지가 있는 거로 안다"고 전했다. 작년과 올해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신탁계약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했다. 최내현 켐코 대표와 유미개발, 해주최씨준극경수기호종중 등에 주식담보 대출을 내준 기관도 한국투자증권이다. 이같은 거래를 통해 신뢰 관계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투자증권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만약 백기사를 모은다면 늦어도 내주까지 움직임에 나설 것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다. 작년 MBK파트너스가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한국앤컴퍼니 사례를 보면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공개매수 시작 열흘 안에 백기사를 구한 게 방어에 주효했다. 통상 공개매수 종료 직전에 주식 매입이 활발하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은 빠르게 움직일 수록 유리하다. 최 회장도 계열사 및 협력사 임직원에 보낸 서한을 통해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의 허점과 실수를 파악하고 대항해 이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고려아연 공개매수 기자간담회에 (왼쪽부터)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가 참석했다./사진=유한새 기자


조단위 치킨게임…출혈 감내해야


최 회장이 대항 공개매수에 성공하려면 기존 공개매수 가격 보다 높게 더 많은 물량을 인수해야 한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66만원이다. 최근 1~3개월 평균 주가에서 23~27%의 할증이 붙은 가격이다. 66만원은 공개매수 이전 증권사에서 제시한 고려아연 목표주가다. MBK파트너스·영풍은 "과거 주가흐름상 드문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공개매수 발표 직후 고려아연 주가가 70만원 선을 뚫은 것을 볼 때 최 회장이 주주들을 유인하기 위해선 70만원 이상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앤컴퍼니 때처럼 MBK스가 기습적으로 공개매수 가격을 올린다면 최 회장도 출혈이 커진다. 

'조단위가 투입된 치킨게임'이라고 강조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과거 공개매수 직후 주가를 보면 원상 복귀됐다"며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손해가 클 텐데 이를 이사회가 지지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와 최 씨 일가 등이 보유한 주식을 제외한 발행 주식수는 1061만411주다. MBK파트너스·영풍의 공개매수 수량은 144만5036~302만4881주다. 기존 공개매수 수량을 제외한 최 회장이 인수할 수 있는 수량은 약 700만주로 추산된다. MBK파트너스·영풍은 발행 주식수의 14~29%를 인수하면 공개매수에 성공한다. 최 회장은 더 많은 수량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 물량이 클 수록 공개매수 난이도는 높아진다. 

국내서 대항 공개매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어려운 방어 기법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조단위 금액이 들어가야 하는 빅딜인데 고려아연 기업가치를 스터디하기에 물리적으로 짧은 시간"이라며 "글로벌 사모펀드의 경우 까다롭게 자금을 집행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분쟁에 끼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MBK파트너스·영풍은 이번 공개매수에서 기존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를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고려아연 주주 구성 가운데 48.8%가 기존 오너일가와 무관한 주주이며 이중에서도 95% 이상이 기관투자가인 것으로 파악된다. MBK파트너스는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 당시 기존 최대주주와 KCGI 지분을 인수했다. 이번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오스템임프란트 때와 같은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부회장은 "기존 기관의 매수 단가는 평균 40만원대로 관측되며 주당 66만원은 충분히 매력적인 가격"이라며 "기관의 속성을 볼 때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공개매수 가격 조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