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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쩐의 전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는 영풍정밀에 대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등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양측 간 지분 확보전이 본격화되면서다. 최 회장 측도 회사채 발행과 백기사 확보 등으로 자금 조달에 적극 나선 가운데 경영권의 향배에 관심이 모인다. 시장에서는 어느 쪽이 승기를 잡든 고려아연이 새 주인을 맞는 수순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반격…쩐의 전쟁 본격화
2일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영풍정밀 보통주 393만7500주(지분율 25%)에 대해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공개 매수 가격은 3만원으로 제시됐다. 이는 MBK의 공개매수가인 2만5000원보다 20% 높은 값이다.
제리코파트너스는 최 회장 측이 설립한 법인이다. 제리코파트너스의 특별 관계자로는 최윤범 회장과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등 고려아연 최씨 일가와 특수 관계인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제리코파트너스가 투입하는 금액은 총 1181억원으로 추산된다. 최 씨 일가는 자기자금 300억원에 차입금 881억원을 더해 총 1181억원을 대항 공개매수에 투입할 예정이다. 공개매수 기간은 이날부터 21일까지 약 20일간이다.
현재 영풍정밀 지분은 최 회장, 최창규 회장 등 최 씨 일가가 33.07%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 고문 등 장 씨 일가의 지분율(21.75%) 대비 10%포인트 이상 높다. 제리코파트너스가 대항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최 씨 일가의 영풍정밀 지분은 35.45%에서 60.45%로 늘어나게 된다.
목표치인 25%를 채우지 못하고 15%만 공개매수해도 지분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영풍정밀에 대한 과반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회사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1.85%에 대한 의결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승기 누가 거머쥐나…"창업주 두 가문 모두 경영권 내려놓는 수순"
최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로 맞불을 놓은 가운데 이에 뒤따라 영풍·MBK 연합도 재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한도가 586억원에 불과한 데다 최 회장이 추진하는 대항 공개매수 자체가 배임·시세조종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분위기다.
MBK는 8조원의 블라인드 펀드를 보유한 PEF 운용사인 만큼 추가 자금 여력은 충분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최 회장은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이날 회사채 발행으로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시장에서는 재무적투자자(FI) 등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서야 영풍·MBK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 회장의 백기사로는 한화그룹과 글로벌 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탈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한국투자증권 등이 폭넓게 거론되고 있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의 협력사인 일본의 스미토모상사, 소프트뱅크 등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결국 돈 싸움”이라며 “현재로선 최 회장의 자금력 등을 감안해 MBK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베인캐피탈, KKR 등의 PEF 운용사가 최 회장의 백기사로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며 “MBK 대(對) 베인캐피탈 혹은 KKR이라면 흥미롭고 치열한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사실상 쩐의 전쟁이 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서 MBK파트너스의 승리를 점치는 시각도 나온다. 사전에 미리 딜을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데다 이전에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그룹 공개매수에 실패한 전례가 있어 이번 딜에서 의지가 크다는 평가다.
IB 업계 관계자는 “올해 평균 40만원대에 달했던 고려아연의 주가가 70만원을 돌파했다”며 “큰 하우스라도 PEF 내부에서도 실사 등을 해야 하다 보니까 이런 대형 딜은 보통 몇 달 걸린다. FI가 선뜻 대규모 자금을 대기가 쉽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MBK 입장에서 이번 딜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한국앤컴퍼니에 이어 자존심을 구기게 되는 셈이라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부 인사와 사내 인력 등은 MBK 측에 반발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 등 일부 정치권 인사와 상공계에서는 고려아연의 백기사가 되겠다며 주식 매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민병덕·박희승·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MBK파트너스가 중국계 자본까지 등에 업고 고려아연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며 “중국 자본과 관련 기업이 고려아연을 인수하면 세계 1위 기업의 독보적인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고 핵심 인력의 이탈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 인력들도 전원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MBK의 공개매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고려아연 노동조합도 거세게 반대하면서 파업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며 고려아연 창업주 두 가문 모두 경영 일선과 주주에서 물러나는 것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최 회장 측도 백기사 확보를 위해 경영권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풍은 MBK에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절반+1주'를 넘기기로 했지만 MBK는 영풍이 가진 고려아연 지분을 묶어 같이 팔 수 있는 공동매각요구권(드래그얼롱)을 확보했다. MBK가 추후 투자금 회수 시 드래그얼롱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양사의 지분 변동 예정 계약은 공개매수가 끝나고 나서 실행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 측이 추가 투자자를 확보하게 된다면 최 씨 일가, 장 씨 일가 모두 더 이상 고려아연의 실질적인 주인이 아니게 되는 셈”이라며 “75년간 ‘한지붕 두 가족’으로서 동업을 유지해 왔으나 관계가 악화돼 사실상 지분을 매각하는 수순을 밟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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