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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역술·무속·풍수를 말할 때 하고싶은 이야기

Numbers_ 2025. 1. 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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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역술·무속·풍수를 말할 때 하고싶은 이야기

易의 大家 공자·茶山은 한번도 점친 적 없어易 본질은 변화…‘당선된다’등 단정표현 잘못風水 출발은 孝, 기복(祈福)으로 변한 게 문제德 쌓고 과욕 버리고 공부하면 운명 바꿀 수도미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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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의 大家 공자·茶山은 한번도 점친 적 없어
易 본질은 변화…‘당선된다’등 단정표현 잘못
風水 출발은 孝, 기복(祈福)으로 변한 게 문제
德 쌓고 과욕 버리고 공부하면 운명 바꿀 수도
미래 예측한 사람들 불행…‘어리숙한 삶’ 좋아


을사(乙巳)년 푸른 뱀의 해가 열렸습니다. 혹시 새해 운세나 사주를 보셨나요. 아니면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 점이라도 봤나요. 점은 왜 칠까요. 사주는 왜 볼까요. 점은 간절한 물음이 있을 때 치는 것이고, 하늘에 묻는 것입니다. 새해 승진을 할 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 지 등 개인적으로는 모두 절실하고 간절한 소망입니다.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확인됐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역술 무속 풍수 등에 관심도 많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알려진 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쓰고 나왔습니다. 

대선 과정에서는 무속인 ‘천공’과 ‘건진법사’ 등이 비선에서 이런저런 조언과 역할을 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것과 관련해서도 ‘지리산 도사’ 명태균 씨가 김건희 여사에게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조언했다는 육성녹음이 나왔습니다.

이번 비상계엄 과정에서도 민간인 신분이면서도 큰 역할을 한 노상원이라는 역술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전직 정보사령관으로 군에서 불명예 퇴직한 뒤 무속인과 함께 점집을 운영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운이 트이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당시 윤석열 후보나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당선이 매우 절실했을 것입니다. 또 윤 대통령이나 김용현 전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비상계엄 선언을 통한 쿠데타 성공을 너무나 원했을 것입니다. 간절했기 때문에 점도 보고 사주도 봤을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비난을 무릅쓰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을 것입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살려고 한 일이 죽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보수세력 전체를 죽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죽이고, 국민 특히 서민들을 죽이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엄청난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천공, 건진, 지리산 도사 아니면 노상원과 동업했다는 ‘아기보살’의 점괘가 틀렸나요. 아니면 점괘는 맞았는데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일까요.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사주팔자나 역술, 명리, 무속, 운세 등을 말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책은 당연히 경전 중의 경전인 ‘주역(역경)’입니다. 주역은 모든 학문의 표준입니다.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역경을 제대로 공부하면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귀신의 세계까지도 근원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논어 맹자 등 다른 경전들과 달리 애초에 ‘역(易)’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책이 아니고 점을 치는 전문 관리들이 소장하고, 점치는 데 썼던 암호와도 같은 책입니다. 주역은 정말 어려운 책입니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사람이면 모두 이것부터 공부합니다.

동아시아 역사상 주역에 심취해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공자입니다. 한국에서는 다산 정약용이고요. 공자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해서 대나무로 만든 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자는 이런 노력 끝에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지은 ‘주역’을 해설해 ‘계사전’ 등 ‘십익’이라는 대작을 남깁니다. 물론 '계사전이'나 '십익'의 저자를 놓고는 논란이 있습니다.

40대 초반부터 주역 공부에 전념한 다산은 당시 유명한 선사가 역에 대한 다산의 지식에 압도당해 술로 세월을 한탄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다산은 주역 해설의 완결자로 평가받는데 ‘주역사전(周易四箋)’이라는 저서를 남깁니다. 

다산은 스스로 “주역 공부에 전념해 10년이 되었지만 하루도 괘를 만들어 어떤 일에 대해 점을 쳐 본 일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공자도 그 어떤 기록에도 점을 치거나 미래를 예언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위대한 역의 대가들은 왜 점을 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역술과 점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 대통령과 영부인이 왜 무너졌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경을 영어로는 ‘더 북 오브 체인지(The Book of Change)’라고 합니다. 역은 곧 ‘변화(Change)’를 의미합니다. 역경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계사전’에는 ‘역무체(易无體)’라는 말이 나옵니다. “역에는 고정된 게 없다”는 뜻입니다. 자연도 우주도 국가도 사람도 고정된 게 없습니다. 우주에는 변하지 않는 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 물건이 없다고 역경은 가르칩니다.

따라서 역의 세계에는 운명이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운명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역은 길흉(吉凶)이나 사건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너는 내일 죽을 것이다, 너는 내일 당선될 것이라는 식의 단정적인 말이 역경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길(吉)이 흉(凶)이 되고, 흉(凶)이 길(吉)이 되는 게 우주와 자연의 법칙이고 인생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역경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주역의 64괘 중 어떤 괘가 나오더라도 결코 대길(大吉)하지도 대흉(大凶)하지도 않습니다. 역경에서는 순환의 논리를 강조합니다. 불행이 지나가면 곧 행운이 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큰 행운이 오면 곧 불행이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큰 행운이 찾아왔다 해서 마냥 기뻐하기보다 더 절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주역에는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역의 기본정신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하는 일마다 병폐가 생기고 후회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임금 왕(王)자를 손바닥에 써 대통령이 되고, 죽지 않으려고 청와대를 버리고 터가 좋다는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고, 구국의 일념으로 올해 운이 트인다는 말을 믿고 거사를 단행했지만 결과는 회(悔)와 흉(凶)만 남았습니다. 점괘가 틀리고 사주와 풍수를 잘못 봐서가 아닙니다. 세상도 인간사도 고정된 게 없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역의 이치를 모른 게 화근입니다. 

역과 점술 사주의 원리를 제대로 알았다면 대통령이 됐을 때 더 절제하고 겸손했어야 합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합니다. 점을 쳐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나왔더라도 일체 조심하고 반성을 거듭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역경은 가르칩니다.

옛 성현들은 “연못 속의 고기를 보는 자는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온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너무 총명하면 불행해집니다. 세상의 많은 비밀을 안다고 자랑하면 좋지 않은 일만 생깁니다. 그래서 총명함을 감추고 약간 어리숙하게 사는 게 좋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생인 노상원은 물론 지리산 도사 명태균, 천공과 건진법사 등은 모두 하나같이 세상의 비밀을 많이 알았던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아는 많은 것을 모두 까발린 것입니다. 어리숙하게 사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게 천공과 지리산 도사의 풍수 관련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풍수는 기복(祈福)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풍수의 출발은 기복이 아니고 효(孝)입니다. 풍수(風水)는 문자 그대로 바람과 물을 피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조상의 유골이 지하에서 바람과 물에 시달리는 것은 자손으로서 견딜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을 피하기 위해 풍수를 본 것입니다. 주희 등 역사상 큰 유학자들은 풍수 실력이 대단했고 공자의 묘를 중국 산동성 곡부(曲阜)로 택한 것도 풍수에 탁월했던 제자 자공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성현들은 누구도 사후에 자손이 잘돼 달라는 등 기복적으로 풍수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애초 풍수를 보고 국가의 핵심 시설인 대통령 집무실을 쉽게 옮기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결과적으로도 천공과 지리산 도사의 청와대에 대한 풍수 해석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하의 일은 절대로 좋은 일도 없고 절대로 나쁜 일도 없습니다. 만약 좋은 일이 생기면 곧장 골칫거리가 생기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반대로 점을 치고 사주를 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마음은 불편하겠지만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 성현들은 설령 운명이라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덕을 쌓고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공부하고 노력하면 됩니다. 

성현들은 세상사 길흉이 모두 우리의 ‘사(辭)’, 생각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도(道)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당신이 성현이 되고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들 가슴 속에 있습니다.   2025년 을사년 새해에는 독자분들이 안과 밖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독자분들의 몸과 마음이 일년내내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