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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의식 상응한 보상없이 보험판매 지속 곤란
건강한 보험생태계 위해 수수료 선지급 개혁해야
중소GA 양극화 보험사 재편 등 시장변화 대비해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시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 중에서 보험판매는 그 어떤 시장보다 경쟁의 강도가 드세다. 보험 침투율이 높고 경쟁자 수도 많아 성숙단계를 넘어선 국내 보험업은 과포화시장이다. 자동차보험처럼 의무보험이 아니면 가입자가 스스로 위험을 자각해 보험상품을 찾을 확률은 높지 않다. 일부 자발적 가입자를 맞이하는 보험사는 오히려 역선택(Adverse Selection)을 당할 가능성에 늘 노심초사한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운 좋게 매번 피해갈 수는 없다. 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불행한 일은 입 밖에 내기조차 싫어한다. 보험판매인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상황을 상기시키고 위험에 대비할 상품을 권유하는 일을 생업으로 한다. 일에 대한 소명의식과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보험 판매업의 지속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지난 16일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제시한 ‘보험판매수수료제도 개선안’은 3월 이후 보험사 생손보협회 보험대리점협회 연구기관 등 시장관계자와 공동으로 금융당국이 논의해온 ‘건전경쟁질서확립 TFT’ 운영의 결과물이다. 금융당국 추진안은 분급 확대와 보장성 수수료 집행 등 선지급 관행 개선, '1200%룰' 대상과 내용의 강화, 수수료 정보의 공개 등으로 요약된다.
우선 현재 대부분 2년 이내에 지급하고 있는 신계약수수료를 3년 내지 7년에 걸쳐 분급해 선지급 관행을 고친다는 것이다. 또 보장성보험 선지급수수료는 개별상품의 계약체결비용 이내에서 집행하도록 제한할 계획이다. 2년차 이후에도 계약을 유지할 경제적 유인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신계약 실적이 부진해지면 관리중인 기존계약 해지를 유도하거나 허위 작성계약이나 불법계약을 추진할 유혹이 여전히 존재한다. 선지급 수수료 중심의 보험영업 관행을 개선하려면 현행 1, 2차년도 분급만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두번째는 보험업감독규정(제4-32조 5항)에 근거한 신계약 판매수수료 ‘1200%룰’의 적용대상과 수수료 범위내용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GA와 보험사 전속설계사 뿐 아니라 GA소속 설계사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스카우트 비용 등을 수수료 한도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2022년 신계약후 13차월까지 월보험료 1200% 이내로 판매수수료를 제한한 이유는 ‘선지급’ 영향이 큰 ‘먹튀 설계사’ 양산, 계약유지관리 소홀, 높은 선지급상품 위주의 불완전판매와 작성계약 등을 방지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행 제도가 보험업의 건전한 발전을 견인하려면 제도적 정비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유럽 호주 싱가포르 등 선진국도 2, 3년차 이후 판매수수료를 나눠서 지급하고 일본은 계약유지율 고객민원건수 등 질적지표를 반영해 선지급 부작용을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험모집 수수료가 ‘해지환급금과 납입보험료의 합계액’보다 많은 상황이면 보험판매인은 ‘차익거래(Arbitrage Transaction)’ 유혹에 항상 노출된다. 현재 보험사뿐 아니라 GA도 계약해지시에 기간별로 지급수수료 환수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양적판매 중심의 폐해를 막을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평가다. 일단 ‘선지급하고 문제발생시 후 환수’하는 제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소비자의 힘으로 시장을 통한 판매관행 개선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보험상품 판매수수료를 공시해 ‘소비자 알 권리’ 강화를 도모하는 취지다. 상품권유 가입시 판매 수수료정보를 공개하고 판매채널별(전속설계사 GA설계사 플랫폼 등) 상품군별로 수수료율 세부정보를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자발적 구매동기가 약한 보험업 특성으로 보험사는 판매채널 확보와 영향력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성장 정체기를 넘어 심각한 역성장에 직면한 국내 보험산업 현장에서 보험 판매인과 판매채널 확보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전쟁상황이다. 전쟁의 수단은 돈이다. 설계사 스카우트를 위한 돈의 전쟁을 중단시킬 필요성은 모두 공감한다. 금융당국의 보험판매수수료 개선안은 현실을 적절히 반영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내년 1분기 중에 설명회 등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보험판매 수수료제도 개선안을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수수료제도 개선방안이 현실화되면 관련된 경제주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계약 2차년 이후 설계사의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설계사가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이미 보험GA협회를 중심으로 설계사 집단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개선안 기준으로 초년도 수수료는 1150%로 동일하지만 2차년도 수수료는 현행 850%에서 250%~550%로 감소한다. 설계사는 고정급으로 임금이 보장된 일반근로자와 달리 자영업자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제활동 참가비용을 먼저 치르고 상품과 서비스공급 대가는 후불로 나중에 정산한다. 일반근로자 월급이 후불인 이유다.
그럼에도 양적 성장이 급한 보험사, 판매자의 강한 협상력, 영업비의 선지출 비중이 높은 보험판매시장 특성 등으로 선지급 관행이 일반화됐다. 생업으로 보험판매 자영업을 영위하는 설계사 상황을 감안해 단계적인 실행계획을 사전에 예고해 충격을 완화할 필요는 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수수료를 앞당겨 일시불로 지급하며 발생하는 리스크를 현재 보험사와 GA는 충당금 설정이나 보증보험을 활용해 대응하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자영업자 신분의 설계사 소득보전과 고용안정 보완방안이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 일본의 경우 설계사 도입 초기 2~3년까지 최저소득을 보장하고 이후에 성과급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GA 경영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GA의 경영재원은 보험사에서 받은 수수료가 유일하다. 설계사 스카우트비나 회사운영비를 선취수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소형GA의 경영상 어려움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지금도 진행중인 GA업계의 대형화와 자본력 확대가 더 급진전돼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다. GA에 대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부여를 통해 금융시장을 활용한 자금조달 구조를 선진화하고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을 위한 전향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GA뿐 아니라 GA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보험사 역시 성장이 위축되고 경영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자본력과 판매망 확충에 사력을 다하겠지만 자본력에 따른 양극화 심화로 보험시장의 경쟁구도도 점차 변화될 것이다. 특히 보험시장 M&A가 활성화되고 이미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문제 보험사의 정리는 더욱 난항이 예상된다. 아울러 특정한 영역에 선택과 집중으로 고객중심의 상품경쟁력 확보에 집중하는 회사가 출현하는 등 전략적 차별화를 통한 생존게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이 보험산업 장기발전을 목표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험판매수수료 개편정책이 첨예한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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