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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이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23년 강종원 전 상무 때부터다. 현재 성낙선 상무가 사내이사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전까지 롯데케미칼 사내이사 자리에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부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가 배치됐다. 롯데케미칼이 CFO를 사내이사로 등기한 것은 사정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재무 위기 대응 차원에서 CFO를 임원으로 등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CFO가 포함된 이사회의 강점은 재무 위기 시 의사 결정이 빠르다는 점이다. 실제 작년 하반기 EOD(기한이익상실)에 빠질 뻔했던 롯데케미칼은 구사일생으로 위험을 넘겼다.
전성기 이끈 6년 곳간지기 조성택 CFO
2014년부터 최근까지 지난 10년은 롯데케미칼 역사상 '격동기'로 꼽힌다. △2014년 미국 진출(LC USA 설립) △2015년 삼성그룹 화학 사업 빅딜 △2020년 롯데첨단소재 합병 △2022년 인도네시아 LINE 프로젝트 △2022년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 등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비롯해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배터리 사업 진출까지 공격적 투자가 꽃피운 해로 기록된다. 상징적 사건이 많았던 지난 10년간 중역은 단연 곳간을 책임지는 CFO였다. 10년간 롯데케미칼을 거친 CFO는 총 3인이다.
2015년 롯데케미칼은 신임 재무회계부문장으로 조성택 상무를 선임했다. CFO로 내정되기 직전 조 상무는 중국에 급파돼 LC가흥·삼강호석 관리총괄을 역임했다.
조 상무가 재임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석유화학 산업 기상도는 '맑음'이었다. 조 상무는 해외 투자 및 M&A를 지원하며 롯데케미칼이 전성기를 맞는데 일조했다.
조 상무의 대표적인 공적은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등 삼성그룹의 화학 관련 사업을 인수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롯데케미칼은 미국 에탄 크래커 건설을 위해 총 5억1400만 달러(75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국내 유화사 중에선 북미 셰일가스 기반의 에틸렌을 생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행보는 여러모로 주목을 받았다.
연달아 대규모 투자가 결정될 때는 시선이 곳간지기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대규모 현금 유출을 대비해 자금을 끌어오되 재무 비율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떠안은 까닭에 CFO의 결정에 회사의 명운이 정해진다.
삼성 화학 3사 지분 인수에 롯데케미칼이 지불한 금액은 약 3조원에 달했다. 순이익, 금융상품 처분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현금을 마련하고 부족한 부분은 장기 회사채 발행을 통해 충당했다. 당시 조단위 현금을 M&A에 투입했지만 롯데케미칼의 부채비율은 70% 이내로 매우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됐다. 곳간지기 조 상무가 역할을 잘 해낸 셈이다.
업황 기상도 '흐림'…영리하게 풀어낸 강종원·성낙선 CFO
202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석유화학 산업은 추락과 반등을 경험하게 된다.
코로나에 따른 수요 위축과 유가 하락 등으로 화학 제품 판가가 하락했다. 또한 중국이 기초화학 제품 자급률을 높이면서 수출길마저 끊겼다. 여기에 유례없는 환경 문제가 부상하면서 탄소 중립에 힘쓰라는 정부 차원의 요구가 빗발치는 등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2021년 팬데믹에 따른 수급 상황이 좋아지면서 기적적으로 회복하지만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가 상존했다. CFO를 유임시켜 '안정'을 택한 경쟁사와 대조적으로 롯데케미칼은 CFO를 교체했다.
2021년도 인사에서 CFO로 신규 선임된 강종원 상무는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입사 후 대체로 재무실에 있었다. 2017년 인도네시아 법인 LC 타이탄 법인장을 지내다 3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시장은 동남아 시장의 거점지역인 데다 LC 타이탄은 미국 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해외 계열사 중에서도 비중이 큰 곳이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국내 두루 챙길 수 있는 강 상무를 적임자로 꼽았다.
당시 석유화학 사업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 범용석화제품의 비중을 축소하고 친환경 소재 등 고부가 가치 소재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분사하고 SK이노베이션이 SK온을 설립하는 등 배터리 소재 사업은 새로운 기회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케미칼도 2022년 10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M&A를 통해 배터리 사업에 출사표를 냈다. 지분 인수가는 2조7000억원으로 당시 시장은 '롯데이기 때문에 가능한 M&A'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강 상무는 대규모 현금 유출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일축시키는 동시에 적기에 자금을 끌어오는 중역을 맡았다.
고가 인수 논란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 투자라는 엇갈린 평가 속에 강 상무는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신주 발행 과정에서 일반 주주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재무비율 상승을 억제하고 조달 비용을 아꼈다는 점에서 영리한 전략이었다. 2023년 배터리 사업 M&A를 잘 마친 강 상무는 그해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공격적 투자와 M&A를 선호하는 롯데케미칼의 경영 전략을 볼 때 더 일찍 CFO를 이사회에 넣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롯데쇼핑, 롯데지주, 롯데웰푸드 등 그룹 내 주요 상장사들은 앞서 CFO를 사내이사로 등기했다.
일각에서는 2022년 석유화학 산업이 고꾸라지면서 CFO의 입지가 커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룹 내 유동성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롯데케미칼도 업황 부진으로 2과 202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 역시 회복이 묘연했다. 이에 따라 첨단소재사업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낸 성낙선 상무를 재무혁신본부로 불러들였다. 강 상무의 퇴임으로 생긴 사내이사 공석도 성 상무가 채웠다.
성 상무는 전임자와 달리 호남석유화학 입사 직후 호텔롯데, 롯데그룹 등으로 전출됐다 롯데그룹과 삼성간 화학 사업 빅딜 전후로 롯데케미칼에 복귀했다. 그룹 재직 시절에는 정책본부 운영실, 개선실에 있었다. 재무뿐만 아니라 글로벌운영·전략 등 다방면으로 경험했다. 성 상무가 CFO로 재직하면서 가장 큰 성과는 EOD 사태에 빠질 뻔한 것을 구해낸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그룹의 대표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해 투자자와 원만하게 대화로 풀었다. 성 상무는 채권자집회 당일 언론에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도 했다. 2025년도 임원 인사에 성 상무는 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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