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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둘러싼 오해]② '20년 성장통' 저변 넓혔지만 혼란도 여전

Numbers_ 2025. 4. 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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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둘러싼 오해]② '20년 성장통' 저변 넓혔지만 혼란도 여전

사모펀드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론스타 사태 이후 잊힌 듯했던 주홍글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해외자본을 넘어 토종 사모펀드까지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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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론스타 사태 이후 잊힌 듯했던 주홍글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해외자본을 넘어 토종 사모펀드까지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은 이성을 흐리게 한다. 맹목적인 비난이 난무하면서 사모펀드 본연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졌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따져본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사모펀드(PEF)는 2004년 말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 개정을 계기로 국내 자본시장에 제도권 형태로 도입됐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100년 넘는 역사에 비하면 늦은 출발이었지만, 지난 20년간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운용 규모는 물론 전략과 구조 측면에서도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외형과 달리 제도는 여전히 과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모펀드를 둘러싼 반복된 오해와 논란은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제도적 불균형과 감독의 공백에서 비롯됐다. 최근 논쟁이 된 ‘기업가정신’ 문제부터 내부통제, 정보공개 기준까지 사모펀드 제도화 20년의 성적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평가다.

한국형 사모펀드의 시작…1세대 운용사 등장

사모펀드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외환위기(IMF) 직후부터다. 당시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대거 매물로 나오면서 국내 우량 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인수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를 계기로 1999년 기업구조조정전문조합(CRC)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형 글로벌 PE와 비교해 자금력과 운용 역량 모두 열세였다.

이후 국내 자본 기반의 플레이어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토종 사모펀드들이 등장했다. MBK파트너스, H&Q코리아,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 등이 초기 시장을 이끈 대표적 운용사로 꼽힌다.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자(LP)들도 출자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초창기에는 비자발적 구조조정 중심의 거래가 주를 이뤘으나, 이후 세컨더리나 전략적 투자 등 다양한 유형으로 확장되며 시장이 다변화됐다.

 

/사진=삼일PwC

 
성장기는 제도 도입 10년 뒤부터 본격화됐다. 2005년 1조원 안팎에 불과했던 국내 사모펀드 운용자산은 현재 140조원을 넘어섰고,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PE가 관여하는 비중도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주요 투자자로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에쿼티·메자닌 투자에 머물렀지만, 최근엔 사모대출까지 아우르며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모펀드는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기업의 구조개편, 신성장 전략 설계, 해외 진출 등 전방위적 경영 파트너로 진화했다. 특히 전략적투자자(SI)가 꺼리는 리스크를 감수하거나 기업 오너가 회피했던 구조조정을 대신 수행하는 역할로 존재감을 확대했다.

/사진=삼일PwC

 
외형 성장에 비해 운용사 간 역량 편차는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등록 요건이 완화되면서 자본금 규모가 작고 인력 구성이 불완전한 운용사들도 대거 시장에 진입했다. 일부는 내부 심사 체계나 실사 역량이 부족해 주요 투자 판단을 외부 자문사나 재무적 자문(FA)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 기업의 실질 가치나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는 우려도 있다.

한 PE 대표는 “명목상 GP지만 실질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운용사들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딜 소싱부터 실사, 포트폴리오 관리까지 전반적 전문성에 편차가 크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투자 방식 진화…거액 베팅·추가 투자 '스타일 다각화'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운용사도 전략을 조정했다. ‘경영권 인수 후 매각’에 머물던 과거와 달리 기업마다 상황에 맞는 다양한 투자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금리 변화와 불확실한 거시경제 여건 속에서 특정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여러 투자 구조를 모색하려는 흐름이다.

자금 여력이 충분하고 투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단독 바이아웃이 이상적이지만, 시장이 녹록지 않다. 두세 곳의 운용사가 컨소시엄을 이뤄 기업을 인수하기도 하고, 경영권 확보 대신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소수지분만 투자한 뒤 기업가치가 높아졌을 때 이를 매각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자금력을 갖춘 사모펀드가 총수일가의 경영권 분쟁에 참전하는 사례도 간간이 나타난다.

운용사의 투자 방식이 다양해지고 거래가 복잡해지자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제도적 장치도 변화했다. 2021년 자본시장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존의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로 나뉘던 체계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묶이고, 이외 사모펀드는 '일반 사모펀드'로 분류됐다.

 

/사진=김앤장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전문성과 위험 감수 능력을 갖춘 LP만 참여할 수 있도록 투자가 제한됐다. 차입 한도는 순자산의 400% 이내로 통합됐으며, 대출 운용도 원칙적으로 가능해졌다. 업무집행사원(GP) 또한 금융당국의 검사 권한에 대한 명문화되는 등 감독 체계가 강화됐다. 일반 사모펀드에는 핵심상품설명서 제공의무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가 추가로 도입됐다.  

책임론과 신뢰의 벽…여전한 오해와 과제

제도 개편 이후에도 사모펀드를 향한 시장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사모펀드 시장은 그간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을 거치며 대중의 의심과 불신이 깊게 자리잡았다. 운용 구조나 투자 성격과 무관하게 ‘사모’라는 이름만으로도 부정적 시선을 받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최근 홈플러스 법정관리 이슈는 이런 시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케이스다.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먹튀' 이미지, 비상장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든다는 인식 등으로 사모펀드의 본질적 역할까지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이 시간이 지나며 재무적 압박을 받게 되면 ‘가치 제고’보다 ‘수익 실현’에 초점을 맞췄던 투자 구조가 도마에 오르기 쉽다. 그 과정에서 자산 매각이나 배당 확대 같은 결정들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사모펀드 전체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운용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기본적으로 펀드 만기 내 수익을 실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적 책임’을 논하는 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남의 돈을 빌려 돈을 버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운용사가 총수일가처럼 장기 보유를 전제로 한 경영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는 것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수십년째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문제를 생각하면 ‘장기 경영’이 사모펀드 체제의 ‘단기 경영’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투자자금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모펀드에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은 균형 잡힌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선은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사모펀드의 운용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책임을 부과하기보다, 제도적 차원에서 보다 균형 잡힌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출자자의 자금을 위탁 받아 수익을 내는 사모펀드에게 필요 이상의 사명감을 요구하는 건 구조적으로 맞지 않을뿐더러 본질을 흐릴 수 있는 접근”이라며 “이들을 무조건 단기 차익만 노리는 투기 자본으로 볼 게 아니라, 미국처럼 부실경영 교체나 사업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수현 기자 clapnow@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