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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이력을 관통하는 것은 '서울대·글로벌·M&A'다. 1960~70년대 화학공학과 인기는 하늘을 찔렀으며 당시 핵심 인재들은 서울대로 집중됐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이 다수 분포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신동빈 회장은 미국서 MBA 과정을 밟아 숫자와 투자에 밝은 인물이다. '글로벌·M&A' 역량이 뛰어난 대표들이 신 회장의 '뉴 롯데'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롯데 화학사업 초석 놓은 '서울대 화공과' 출신들
롯데케미칼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발간한 사사에 실린 엄상수 전 동경사무소 소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군에 입대해 있는 대상자들에게 겨울 내복을 사서 보낼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그는 호남석유화학이 출범하기 전 기반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재를 모이는 일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마경석 전 호남석유화학 부사장의 권유로 서울대 화공과 졸업생 9명이 호남석유화학에 최종 입사했다. 이는 롯데케미칼 최초의 외부인력 집단채용이다. 허수영 전 부회장도 당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부회장 직전 롯데케미칼을 이끈 정범식 전 사장 역시 서울대 화공과 졸업생이다.
서울대 화공과 동문이 롯데케미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롯데그룹을 떠난 황각규 전 부회장은 허 전 부회장의 4년 후배다. 황 전 부회장이 떠난 후 경영혁신실을 맡은 이훈기 전 사장 역시 서울대 화공과 출신이다. 이 전 사장은 2024년도 임원인사에서 롯데케미칼 화학군 화학군 총괄대표로 추대됐지만 최근 사임했다. 이 밖에도 임병연 전 부사장, 황진구 전 부사장 등 여러 서울대 화공과 출신들이 롯데케미칼 대표 자리를 거쳤다.
지난 20년간 서울대 화광과 출신이 아닌데 대표에 오른 인물은 단 2명이다. 6년간 롯데케미칼을 책임진 장수 CEO 김교현 전 부회장과 삼성 출신의 이영준 현 화학군 총괄대표(사장)는 각각 중앙대, 고려대를 졸업했다.
'아시아 최고 화학사' 이끈 글로벌 인재들
'화학산업의 쌀' 에틸렌을 제조하는 롯데케미칼은 전통적으로 실무형 인재들이 강세를 보였다.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창업에 힘을 보탠 정범식 전 사장, 화학 업계 베테랑을 알려진 허수영 전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1992년 납사 크래커 상업 가동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PE·PET 등 다운스트림 영역으로 확장, 제품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며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현대석유화학, KP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이에 따라 정 전 사장, 허 전 부회장처럼 화학산업 외길 인재가 각광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롯데케미칼은 '아시아 최고 화학기업'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2010년 말레이시아 타이탄 케미칼을 인수하며 글로벌 경영 신호탄을 쐈다. 당시 타이탄 케미칼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거점을 두고 있어 롯데는 동남아시아 진출에 적합한 매물로 평가했다. 인수가는 1조5000억원으로 상당한 웃돈을 지불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2019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대규모 ECC(에탄크래커) 공장을 지은 일로 신동빈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했다.
당시 롯데케미칼에는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인재상이 두각을 보였다. 평소 신 회장도 "다양한 경력과 해외 경험을 갖춘 CEO"를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롯데케미칼 대표에 오른 김교현 전 부회장은 대표적인 글로벌 전문가다.
2007년~2014년 사이 롯데케미칼은 해외 진출을 통한 원료 다양화에 매진했다. 일환으로 중동 현지 회사와 합자 회사 설립,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사업 컨소시엄 참여, 말레이시아 타이탄 케미칼 인수,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사업 투자 등을 추진했으며 굵직한 해외 신사업 뒤에는 김 전 부회장이 있었다. 당시 김 전 부회장은 신규 사업총괄로 일했다. 대표적인 공적은 LC 타이탄 대표(2014년~2016년)로 재임하는 동안 증시에 상장할 만큼 체질을 끌어올린 것이다.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에 오른 뒤에는 신 회장이 해외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2021년부터 작년 말까지 기초소재사업 대표를 지낸 황진구 전 부사장도 해외 사업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 평가받았다. 황 전 부사장은 우즈베키스탄에 HDPE, PP 생산을 위한 가스전 화학단지를 짓는 수르길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간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의 일환인 수르길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로 석유화학 기술의 해외 수출이라는 상징성을 지녔다. 황 전 부사장은 수르길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LA프로젝트를 맡았다. 미국 법인인 LC USA를 이끌다 2021년 친정인 롯데케미칼로 복귀했다.
그룹 M&A 전문가 롯데케미칼로 급파
2017년 롯데지주가 출범했지만 롯데케미칼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18년 지주 산하 계열로 편입됐다.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롯데카드 등 주력 계열사를 우선 편입하고 덩치가 큰 롯데케미칼은 상대적으로 지분 정리가 늦었다.
최대주주가 롯데물산에서 롯데지주로 변경된 직후 가장 큰 변화는 지주 출신에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특히 M&A에 특화된 그룹 전략실 임원을 선호하는 기류가 강했다. 미래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데 따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기초소재사업 대표를 역임한 임병연 전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화학공학 박사를 취득한 공학도로 출발점은 호남석유화학이지만 그룹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2015년 삼성 화학사업 인수 당시 그룹 정책본부에 있었으며 딜을 총괄한 황각규 전 부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훗날 정책본부가 가치경영실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 실장을 역임하다 롯데케미칼 대표에 올랐다.
작년 퇴임한 이훈기 전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실로 입사했다. 1995년 신 회장이 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역임할 때 이 전 사장도 함께 있었다. 신 회장은 젊은 인재를 적극 등용하는 기조가 강했는데 이 전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LC타이탄, 롯데렌탈 등 중요 M&A 실무에 참여했다.
2015년 삼성 화학사를 인수한 직후 기능성소재, 정밀화학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시도가 본격화된다. 2020년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면서 롯데케미칼 내 첨단소재사업 총괄 자리가 신설됐다. 초대 사업부 대표로 이영준 사장이 정해졌다. 삼성종합화학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사장은 지난 20년간 롯데케미칼 대표 가운데 유일한 외부 출신이다. 2022년 롯데케미칼은 수소와 전지 두 가지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이 사장은 전지소재사업을 책임졌다. 2025년 임원인사에서 유임되는 동시에 화학사업 총괄이라는 중역을 맡게됐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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