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CFO 리포트] MBK에 휘둘린 금융기관

Numbers 2025. 3. 11. 15:32

▼기사원문 바로가기 

 

 

[CFO 리포트] MBK에 휘둘린 금융기관

홈플러스 인수자금 자산매각으로 상당부분 회수사모펀드 인수전략 실패비용을 금융기관에 전가채권자평등원칙 훼손 없도록 제도 보완 나서야고려아연 경영권분쟁을 주도하며 크게 주목받았

www.numbers.co.kr

홈플러스 인수자금 자산매각으로 상당부분 회수
사모펀드 인수전략 실패비용을 금융기관에 전가
채권자평등원칙 훼손 없도록 제도 보완 나서야

고려아연 경영권분쟁을 주도하며 크게 주목받았던 사모펀드 MBK가 또다시 홈플러스 기업회생 이슈를 들고 자본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가 신청한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홈플러스는 단기유동성에 문제가 생기고 납품업체 정산이 미뤄지면서 재무건전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한국신용평가는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했다. 금융기관 차입금 차환이 어려워지고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대주주인 MBK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홈플러스의 회생신청 소식이 전해지자 3월 4일 한국신용평가는 홈플러스 신용등급을 A3-에서 D등급으로 또다시 낮췄다. 회생계획에 따라 금융부채에 대한 채무조정과 상환유예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내려진 당연한 조치였다.

MBK와 홈플러스가 상사채권(협력업체거래 등)과 임금채권를 제외한 금융부채에 한정해 신청한 부분 회생안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특히 홈플러스는 자금흐름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부도에 앞서 선제적으로 회생신청(채무자회생법 제34조)을 했다. 자금사정 악화에 대비해 홈플러스가 미리 신청한 부분회생 신청을 아주 짧은 시간(11시간)에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워크아웃 등 자체적인 회생 노력을 시도하기 전에 곧바로 회생법원으로 직행해 판단을 받은 것이다.

기업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모든 채권자를 공정하게 보호하는 것을 원칙(채무자회생법 제1조, 제218조)으로 한다. 다만 채무변제 계획을 수립할 때 법원이 일부 채권에 대해 우선변제 순위를 조정(채무자회생법 제180조)할 수 있는 재량은 있다. 법원의 재량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회생제도 시행으로 기업경영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판단이 중요하다. 따라서 조건 없이 상사채권과 임금채권은 보호하고 금융채권만을 회생프로그램 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은 채권자간 형평성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MBK는 홈플러스의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전 부분회생제도를 이용했다. 인수전략 실패를 금융기관으로 전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회생절차를 통해 경영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그나마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유통시장은 쿠팡 알리 테무 등 온라인 플레이어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이미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경기침체 지속으로 업계 1위 사업자인 이마트를 비롯 오프라인 중심의 기존 유통기업은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본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영 정상화로 돈을 벌어 부채를 줄이는 선순환 사이클을 보여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시간 끌기용 부분회생 승인으로 ‘희망고문’에 소요되는 금융비용을 금융기관과 개인 채권투자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행 기업회생법은 모든 채권자를 대상으로 공평하게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정채권에 한정하는 부분회생은 보다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두고 시행돼야 한다. 특히 홈플러스는 회생신청을 열흘 정도 앞둔 2월 21일 CP와 전단채 등으로 단기자금을 조달했다. 지급불능 선언이 임박한 시점에 투자자를 속이고 자금을 빌린 것은 심각한 모럴 해저드다.

2015년 MBK가 홈플러스 인수에 사용한 전략은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Leverage Buy Out) 방식이다. LBO는 인수대상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돈으로 회사를 우선 인수한다. 경영권을 확보한 후 돈이 되는 좋은 자산을 매각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부채를 상환하면서 경영권을 재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인수전략이다. 2015년 MBK는 홈플러스 인수자금으로 7조2000억원을 조달했다.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마련하고 메리츠증권 등 금융기관에서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4조30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나머지 7000억원은 국민연금 등에서 상환우선주(RCPS)로 조달했다. MBK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 동안 환금성이 좋은 홈플러스의 영업점 20여개를 매각해 4조원 이상의 투자금을 이미 회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MBK가 인수할 당시 홈플러스는 보유 부동산도 많고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다. MBK의 강점인 효과적인 PMI(Post Merger Integration)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 부채상환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직후부터 국내 유통업계는 온라인 쇼핑시장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대형마트가 크게 위축되는 대변혁기를 맞았다. 금감원에 의하면 MBK 인수 직후인 2016년 홈플러스의 당기순이익은 3231억원 흑자였다. 하지만 대규모 금융비용이 발생하기 시작한 2019년은 5322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2021년 이후 3년 연속 누적손실이 1조572억원에 이르고 지난해 이어 올해도 대규모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매출성장은 둔화되는 데 임금과 임대료 등 판매관리비는 증가했다. 특히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한 금융비용이 홈플러스 수익성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2019년~2023년 5년 누적으로 홈플러스 금융비용은 2조1062억원으로 매년 4000억원 이상 발생했다. MBK의 LBO방식 인수전략이 실패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홈플러스의 회생 비용은 MBK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결과론적이지만 MBK의 홈플러스 인수 실패 비용을 금융기관에게 떠넘기는 전략을 서울회생법원이 법적으로 지원한 셈이다. 당장 기업경영 중단을 막아 피해 확산을 줄이자는 취지로 이해되지만 여러 후폭풍이 예상된다. 기업회생제도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고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상사채권과 임금채권은 보호하고 금융채권만 상환을 유예하고 비용을 탕감하는 부분회생은 단기적인 영업중단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생방식으로는 홈플러스 경영이 근본적으로 정상화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기업회생제도를 악용해 책임을 금융기관으로 떠넘기는 일이 빈발할 것이다. 내부정보를 숨기고 회생신청이 임박한 가운데 금융부채를 늘리는 모럴 해저드의 폐해는 투자자들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또 금융기관은 자금운용 실패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를 축소하고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과 경제발전에 모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금융권 등 금융채권자가 과도한 손실을 일방적으로 입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