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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1년 전 유한양행 사태가 주는 교훈

Numbers 2025. 3. 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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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1년 전 유한양행 사태가 주는 교훈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세습의 원천적 차단. 사회적 책임에 따른 이윤 분배.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과 이웃나라인 토요타 가문만의 경영이념은 아니다. 유한양행의 경영 모토이기도 하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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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세습의 원천적 차단. 사회적 책임에 따른 이윤 분배.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과 이웃나라인 토요타 가문만의 경영이념은 아니다. 유한양행의 경영 모토이기도 하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99년 전 '건강한 국민만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주식회사가 생소했던 1962년엔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며 자본과 경영을 분리했다.

'사회적 보건, 국민 건강,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의 경영이념은 국내 제약업계에선 더욱 독보였다. 오너일가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국내 제약사의 특성과 다소 달랐던 경영 모토였기 때문이다. 유한양행 직원은 누구나 실력만으로 대표가 될 수 있었다. 회사는 일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직원 모두의 공공재였다. 제약사 오너일가의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역으로 유한양행의 위상은 더 올라갔다.

지배구조 논란과 동떨어져 있던 유한양행이 지배구조 리스크 유탄을 맞은 건 작년 초다. 기존 경영진이 30년 만에 회장 및 부회장직을 신설하겠다고 나선 이후였다. 회장직 신설은 주인없는 회사, 구성원이 모두 주인인 회사에 '오너' 직을 부여하는 의도로 읽혔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불거진 유한양행 직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일부 직원들은 본사 앞에 대형 전광판 트럭을 세워 경영진을 비판하기도 했다. 끈끈했던 직원 문화를 자랑했던 모범회사의 내홍은 언론들의 먹잇감이 됐다. 회사와 연을 두고 살지 않았던 창업주의 직계손녀까지 나서 "할아버지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며 강하게 발언하기도 했다.

회장직 신설 논란이 확산하자 유한양행은 부랴부랴 보완책을 내놨다. 우선 유력한 회장 후보였던 이정희 의장은 회장직에 오르지 않았다. 내규를 통해 후대에도 회장을 통한 장기집권 체제가 나오지 않도록 회장 선임에 제한 조건을 걸었다. 결국 유한양행은 3월 주총에서 회장 후보에 누구도 추천하지 않았다. 

이후 논란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사태가 남긴 교훈은 컸다. 구성원 내의 합의가 없다면 회사 역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이윤 추구만이 회사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 100년 가까이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문화를 중시해왔던 회사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회장직 신설이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 기업에서 회장직 신설에 직원들이 반발한 사례는 많지 않다. 사유화라는 일부 직원들의 우려도 크지 않다. 유한양행의 지분구조에서 회장이 오너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영자 개인이 지닌 지분이 0.1%가 채 되지 않는 이곳에서 회장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파장이 일어난 이유는 그간 쌓아온 '유한양행'의 기업문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유한양행에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너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거버넌스 리스크 논란에 취약하다. 2·3세 경영 승계 과정에서 경영다툼이 빈번해지고 있다. 당사자는 상당수가 일반 주주들이 많은 상장사다. 경영다툼은 결국 수많은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기업의 책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윤을 배분하고 이를 위한 체계를 만들어 가는데엔 구성원의 합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1년 전 유한양행 사태를 다시 되새기는 이유다. 유한양행은 올해 주총에서도 회장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았다. 신설된 규정상 연임하지 않은 대표만 회장직에 오를수 있기 때문이다. 조욱제 대표는 지난해 이미 연임했다.

김형석 제약바이오팀장 khs84041@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