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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 큐텐 대표, 11번가 인수와 나스닥 상장으로 G마켓 성공신화 재현할까

Numbers 2023. 10. 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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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거인’을 향해 광폭 행보 중인 구영배 큐텐 대표가 업계 4위 업체 11번가 인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 대표는 이미 티메파크(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연합군을 거느리고 있지만 11번가까지 품는다면 쿠팡과 네이버에 이어 단숨에 업계 3위로 도약할 수 있다.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의 글로벌 물류망을 기반으로 해외직구 사업을 강화하며 미국 나스닥 입성까지 노리고 있다. 구 대표가 2000년대 이룬 G마켓 성공 신화를 오늘날 큐텐으로 재현할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이커머스 거인 구영배 대표
 


국내 이커머스 업계 입지전적 인물로 통하는 구 대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 미국계 유전서비스업체 슐럼버거였다. 그는 1991년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슐럼버거에 입사해 1999년까지 엔지니어 및 기술 매니저로 일했다. 그러던 중 이기형 인터파크 창업주의 제안을 받고 인터파크에 합류하며 이커머스 업계 발을 들였다. 구 대표는 당시 인터파크 전략기획실에서  G마켓 전신인 구스닥 사업을 맡아 이끌었다. 하지만 인터넷 경매 시장에서 구스닥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구 대표는 회사에 합류한 이듬해인 2000년 별도 법인으로 구스닥을 분사하기에 이르렀고 3년 뒤인 2003년 사명을 G마켓으로 변경하며 오픈마켓 체제를 도입했다.

대대적인 체질 개선 후 구 대표는 G마켓의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2006년 나스닥에 입성했고 2007년에는 전자상거래 업체 중 최초로 연간 거래액 3조원을 돌파해 당대 업계 1위였던 옥션을 넘어섰다. 2009년 옥션의 모회사였던 이베이에게 G마켓을 매각한 구 대표는 1년 뒤 한국을 떠나 동남아시아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이베이의 투자를 받아 ‘큐텐’을 설립한 것이다. 당시 이베이의 투자 조건은 “한국 시장에서 10년 동안 전자상거래로 경쟁하지 않는다”였다. 이에 응한 구 대표는 이후 큐텐을 11개국 19개 거점 글로벌 물류망을 갖춘 유통 대기업으로 키워내며 다시 한번 저력을 입증했다. 

2021년 구 대표는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이베이와의 ‘10년 불가침’ 계약 조건이 만료되면서 이베이코리아(G마켓)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한 것이다. 다만 이마트와 롯데쇼핑으로 경쟁 구도가 양분되면서 한발 물러난 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이커머스 광폭 행보를 시작했다. 그해 9월 티몬을 인수하고 올해 3월과 4월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를 잇달아 사들였다.  


11번가 인수 드라이브 
 

(그래픽=박진화 기자)


큐텐 산하에 ‘티메파크’ 연합군을 결성한 구 대표는 업계 4위 11번가 인수를 위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실상 티메파크 연합군 만으론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티메파크의 합산 점유율은 4.9%로 업계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거래액 규모도 4조 9000억원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11번가를 품에 안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단숨에 점유율이 11.9%로 뛰며 쿠팡(24.5%)과 네이버 쇼핑(23.3%)에 이어 업계 3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구 대표에게 11번가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달 초부터 구 대표는 11번가 모기업인 SK스퀘어와 인수를 놓고 담판을 진행중이다. 구 대표는 특유의 협상력과 큐텐의 향후 성장 가능성을 내세워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구 대표의 티메파크 인수 사례를 봤을 때 11번가가 제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 대표가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인수를 위해 들인 돈은 6000억원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티몬이 2020년 재무적 투자자(FI)의 투자를 유치할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가 2조원, 위메프가 2019년 말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받을 당시 가치가 2조800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헐값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마침 SK스퀘어는 투자자에 지연 이자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FI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을 당시 약속했던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기한은 지난달 말까지였다. ‘을’의 입장에 놓인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IPO에 실패한 11번가는 대안이 시급하다”며 “인수 관련 협상은 올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 거론되는 11번가의 몸값은 1조원대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투자유치 당시 기업가치가 2조70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5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이커머스 판을 꿰뚫고 있는 구 대표가 이런 점을 놓칠 리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11번가의 하락한 기업가치는 인수 협상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적도 이러한 '헐값 매각' 우려를 더한다. 11번가 영업손실은 2020년 98억원에서 이듬해 694억원, 지난해에는 1515억원까지 불어났다. 


적자기업 사령관 구 대표... 속내는?

 

지난 9월부터 큐익스프레스가 운영을 시작한 물류센터 QDPC이천 전경.


다만 업계의 반문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11번가뿐만 아니라 구 대표 산하에 있는 티몬, 위메프 역시 지난 수년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떄문이다. 거침없는 인수 행보가 사실상 수익성이 배제된 ‘덩치 불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티몬과 위메프는 누적된 손실로 자본 잠식에 빠진 상태다. 먼저 티몬은 지난 2018년 1363억원의 영업손실 이후 2019년 746억원, 2020년 631억원, 2021년 760억원, 2022년 1527억원으로 만성 적자 늪에 빠져 있다. 같은 기간 위메프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8년 390억원, 2019년 758억원, 2020년 542억원, 2021년 335억원, 2022년 539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올해 들어선 사용자 수까지 내리막을 걷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9월 티몬의 월간사용자수(MAU)는 316만명으로 올해 1월 기록한 357만명과 비교해 11.5% 하락했다. 위메프 역시 지난 1월 412만명에 달하던 사용자 수가 지난달 288만명까지 30% 넘게 빠졌다. 두 기업 모두 큐텐 인수 후 지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진한 업체들을 끌어모은 구 대표로선 분명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익성을 우선순위에서 미루더라도 구 대표가 이커머스 플랫폼 확보에 적극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심사를 받고 있는 큐익스프레스는 11개국 19개 거점에 걸쳐 물류망을 갖추고 있다. 구 대표는 큐텐 산하의 플랫폼을 늘리고, 큐익스프레스 인프라와 연계를 통해 글로벌 크로스보더(직구·역직구) 사업을 강화하고자 한다. 즉 큐익스프레스의 매출과 구매액, 거래량 등을 활성화해 기업 평가 가치를 높이고 상장에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는 구상인 것이다.

이를 위해 구 대표는 플랫폼별 통합 풀필먼트 서비스 ‘Qx프라임’을 선보였다. 올해 3월 말 'T프라임(티몬)'을 시작으로 'I프라임(인터파크쇼핑)'과 'W프라임(위메프)'을 잇달아 론칭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모두 동일한 사업구조를 갖췄다. 큐익스프레스 물류망을 구심점으로 큐텐의 해외 판매자가 등록한 상품을 중간 유통 단계 없이 국내는 2일, 해외는 5일 내 배송 완료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엔 경기도 이천에 신규 물류센터 ‘QDPC이천’을 열었다. 향후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보폭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한 관계자는 "구 대표는 현재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쿠팡(2021년)보다 15년이나 앞서 나스닥에 상장시킨 경험이 있다"면서 "다만 구 대표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날의 큐텐 연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재형 기자 jhpark@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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