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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이탈 전적’ 한진 오너家, ‘호반의 난’ 점치는 시장

Numbers 2025. 5. 1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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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이탈 전적’ 한진 오너家, ‘호반의 난’ 점치는 시장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다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사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호반건설이 지분율을 20%에 가깝게 늘리자, 한진 측은 LS와 손잡고 반(反)호반 연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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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로 한진칼 본사 사옥 /사진=한진그룹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다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사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호반건설이 지분율을 20%에 가깝게 늘리자, 한진 측은 LS와 손잡고 반(反)호반 연합을 강화하며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과거 한진이 오너 일가에서의 내부 이탈로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전적이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호반의 난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선도 나온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S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650억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교환 대상은 LS의 자기주식 38만7365주(지분율 1.2%)다.

이를 두고 LS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유동성을 제공받는 동시에 사실상 우호 지분을 확보하게 돼 한진그룹과의 동맹을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LS 측은 이번 거래가 지난달 체결한 한진칼과의 업무협약의 연장선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양측 모두 경영권 방어 목적이 짙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LS와 한진 모두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LS는 승계 과정에서 오너 일가 40여명이 지분을 쪼개 보유하고 있어 지배력이 약한 구조다. 구자열 회장이 1.87%, 특수관계인 44명이 합산해 32.15% 수준이다. 한진칼도 조원태 회장(5.78%), 조현민 사장(5.73%) 등 오너 일가 지분이 고르게 분산돼 있다.

한진칼은 최근 2대주주 호반그룹이 지분을 추가 매입하자 경영권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한진칼은 LS와의 동맹에 이어 지난 15일 663억 규모의 자사주 44만44주를 사내복지기금에 출연하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호 지분율을 20.79%로 늘렸다. 이로써 조 회장(5.78%)과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친 우호 지분은 31.37%로 늘어난 상황이다. 이 중 투자계약을 맺은 산업은행 보유 지분율(10.58%)을 빼면 호반건설(18.46%)과의 격차는 2.33%포인트에 불과하다.

호반건설은 최근 한진칼 지분을 17.44%에서 18.46%로 확대하며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변수로 꼽히고 있다. 현재 호반그룹은 △호반건설 11.5% △호반호텔앤리조트 6.81% △호반 0.15% 등 계열사 명의로 나눠 한진칼 지분을 보유 중이다. 2022년에는 경영권 분쟁 중이던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 13.97%를 인수하며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단순 투자로 굳이 지주사에 이 정도 규모의 돈을 넣을 이유가 없다”며 “호반그룹이 지분율을 더 늘려 경영권을 가져가려는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반 입장에서는 지분 추가 매입으로 배당을 받으며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고 덧붙였다.

시장 일각에서는 호반그룹이 한진칼의 내부 균열을 노리고 있다고 본다. 현재 한진칼 지분 구성을 보면 오너 일가의 지분이 고르게 분산돼 있어 내부 결속이 경영 안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진칼은 과거 가족 간 경영권 갈등이 불거졌던 전례가 있어 언제든 균열이 다시 드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2020년 조원태 회장의 동생 조현아(현 조승연)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KCGI, 반도건설 등과 연대해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실제로 오너 일가의 이탈표를 외부 세력이 이용해 경영권을 가져간 사례는 국내에서도 존재한다. 2012년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동남합성의 경영권 분쟁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남합성은 당시 최대주주였던 이지희 전 대표는 3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9.56%의 지분을 가진 미원상사에 경영권을 내주게 됐다. 여동생 이주희 씨와 창업주이자 부친인 이의갑 명예회장이 미원상사와 손을 잡으면서다. 당시 이주희 씨가 보유한 지분은 8.8%에 그쳤지만 가족 등 지분을 합치면 약 23% 수준이었다. 주주총회에서 내부 반란표가 나오면서 이 전 대표는 밀려나고 이주희 씨 측이 측근인 이장훈 전 대한파카라이징 대표와 미원상사 측 인사를 각자대표로 내세워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아직 한진칼의 경영권 리스크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조 전 부사장처럼 가족 구성원이나 우군이 이탈해 다시 한번 외부 세력과 손잡고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형제 간 상속 갈등 속에서 한 쪽이 외부 투자자와 연대해 적대적 M&A를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며 “호반도 그런 속내를 감춘 채 장기적 시나리오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부 반란표가 있더라도 조 회장 측이 델타항공(14.9%)과 산은 등의 우호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델타항공과 산업은행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이탈할 경우 지분 구도는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

특히 델타항공은 20년 넘게 조 회장 측과 파트너십을 이어왔지만, 내부 최고경영책임자(CEO) 교체 등 변화가 생길 경우 경영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은행의 경우 투자 계약에 의결권 공동행사 의무는 없는 데다 국책은행으로서 본래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의 파트너십은 순수하게 사업적인 부분에서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며 “LS그룹 등의 우군 같은 존재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