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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 식품과 주류 '두 마리' 토끼 잡을까

Numbers 2023. 10. 6. 12:36

 

송현석 신세계푸드 겸 신세계엘앤비 대표

 

올해로 취임 4년차를 맞은 송현석 신세계푸드 겸 신세계앨앤비 대표가 '도전과 증명'의 여정을 시작했다. 송 대표는 지난달 전체 사장단의 40%가 물갈이된 신세계그룹 정기 인사에서 '정용진의 남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그룹 내 입지를 공고히 했으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새로 대표를 맡은 신세계엘앤비가 주력인 와인수입업부터 희석식소주, 발포주 사업에 이르기까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그룹 내 ‘골칫덩이’로 전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신세계푸드를 안전 궤도에 올리며 25년 경력의 ‘마케팅통’ 저력을 입증한 송 대표의 '승부수' 역량에 그룹 수뇌부를 비롯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송 대표는 과연 식품과 주류 사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신세계 인사 폭풍의 유일한 생존자 

 

송현석 대표 프로필(그래픽=박진화 기자)

 

송 대표는 2020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중용된 주요 계열사 대표 중 이번 신세계 인사 칼바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재다. 그는 '신상필벌'의 인사 폭풍 속에서 오히려 신세계엘앤비 수장 자리까지 꿰찼다. 한 관계자는 "'그가 신세계푸드 성장에 기여한 공로와 능력을 이명희 회장에게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국내 식음료 업계에서 손 꼽히는 '마케팅통'이다. 1994년 노스웨스턴대 마케팅 석사 졸업 후 1995년 CJ 엔터테인먼트 미주법인에서 업계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AOL타임워너 마케팅 부장, 맥도날드 마케팅팀장, 얌 브랜즈 피자헛 코리아 마케팅 총괄 이사, 오비맥주 마케팅 총괄 부사장 등의 요직을 거친 뒤 2020년 10월 신세계푸드 대표로 선임됐다. 

 

화려한 글로벌 기업 커리어를 가진 CEO답게 송 대표는 평소 수평적 조직문화, 대내외 소통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한 신세계 관계자는 "1968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온라인 마케팅 트렌드 흐름을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편"이라며 "가끔 회사에 카고바지 등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할만큼 전반적으로 유연하고 트렌디한 사고방식을 가진 리더"라고 평했다. 

송 대표 경영 리더십의 뿌리는 역시 '마케팅'이다. 그는 취임 이후 신세계푸드의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인원을 4명에서 10명으로 늘리는 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관련 부서를 키우고 소비자와의 '접점'부터 늘렸다. 기존 B2B(기업간 거래) 위주로 영위하던 식자재·식품 납품, 단체급식 서비스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식물성 대체식품 신사업을 개척하는 동시에 B2C(기업 소비자간 거래)사업을 활발히 펼치며 친숙한 브랜딩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 결과 노브랜드버거의 시장 안착을 시작으로 노브랜드피자, 대안육 브랜드 베러미트 출범, 수제맥주 펍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한 데블스도어 내 다채로운 콘텐츠, 식물성 식품 플래그십 스토어 유아왓유잇 오픈까지 대중음식과 신생식품을 아우르며 시장에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 대표가 이끈 체질 개선은 호실적으로 이어졌다. 신세계푸드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지난 2020년 1조2403억원에서 2021년 1조3329억원, 2022년 1조4113억원으로 지속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 매출액도 719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6776억원 대비 6.2% 증가세를 보였다. 이 기간 영업이익 역시 약 126억원으로 지난해(125억원)보다 소폭 늘며 성장을 이어갔다. 

 

신세계앨앤비의 구원투수

 

(사진=신세계 그룹)

 

이명희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타고난 마케팅 능력과 유연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신세계푸드의 내실을 다진 송 대표에게 그룹 내 주류사업까지 맡겼다. 식품제조업과 외식업을 주로 영위하는 신세계푸드와 와인수입업을 주력 사업으로 내세우는 신세계엘앤비는 비즈니스 성격이 판이하다. 신세계푸드와 신세계앨앤비 대표를 겸업하게 된 송 대표의 케이스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식품업체와 와인수입사를 동시에 경영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 회장은 줄곧 관련 분야에서 성공 가도를 달린 송 대표의 역량을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송 대표는 2010년부터 8년 동안 오비맥주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며 15년 만에 숙적 하이트맥주를 제치고 오비맥주를 시장 선두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냈다. 이후 신세계로 적을 옮긴 송 대표는 신세계푸드를 그룹 내 주요 계열사로 키우며 오너가의 눈앞에서 능력을 입증했다. 이 회장은 송 대표가 신세계푸드를 지속 성장시키면서 종합주류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신세계엘앤비의 열망에도 날개를 달아줄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엘앤비는 분위기 반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신세계엘앤비의 매출은 2064억원으로 전년 2000억원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116억원으로 전년 212억원과 비교해 45.3%(96억원) 쪼그라들었다. 당기 순이익 역시 2021년에는 155억원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66억원에 그치며 57.4% 역성장했다.

재무구조 역시 악화일로다. 지난해 말 기준 신세계엘앤비의 금융부채(원리금)의 경우 892억원으로 전년 623억원 대비 1년 만에 270억원가량 불어났고 부채비율은 153.3%에서 174.8%로 올랐다. 특히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이 같은 기간 324억원에서 527억원으로 늘어나며 빈약한 재무건전성을 노출했다.

신세계엘앤비가 이처럼 위기를 맞은 이유는 주력으로 다루는 수입 와인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2리터 이하 와인 수입량은 2만6235톤으로 전년 동기(3만3495톤) 대비 21.7% 줄었다. 내수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데다 환율과 물가 상승 등 대내외 여건에 취약한 수입업의 한계가 여실히 부각되면서 신세계앨앤비는 단순 주류 수입·유통을 넘어 제조까지 아우르는 종합주류기업으로 거듭나야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송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송 대표가 오비맥주와 신세계푸드에서 증명한 성공 방정식을 신세계엘앤비에 최적화해 대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신세계엘앤비는 이미 앞서 희석식 소주 ‘푸른밤’, 발포주 ‘레츠‘ 등 주류 제조에 야심 차게 도전한 바 있지만 두 제품 모두 차별화 전략 부재라는 평가 속에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며 쓴맛을 봤다. 한 관계자는 "결국 송 대표도 주류 제조 등 신사업을 통해 종합주류회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겠지만 희석식 소주나 발포주 등 매스 시장 아이템으로 승부를 보려했던 전과는 다른 성격의 노선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내에선 송 대표의 CEO 겸업으로 인한 두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푸드의 수제맥주 펍 데블스도어, 신세계엘앤비의 와인앤모어 등 오프라인 매장과 연계한 제품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에게 ‘마셔볼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B2C 영역 확장에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엘앤비가 데블스도어와 같은 오프라인 장소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신세계푸드, 오비맥주에서 송 대표가 쌓은 B2C 노하우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기 위한 취지의 체험형 마케팅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새 리더를 맞은 신세계엘엔비 내부적으로도 자유로운 조직 문화에 기반해 침체돼 있던 분위기가 반전되고, 가시적 성과에 돌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아직 새 리더십에 대해 평가하긴 이르지만 최근 업황 악화, 실적 부진에 직원들까지 경쟁사로 대거 이직하는 등 사내 분위기가 최악인데 송 대표 취임을 계기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즐겁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기진작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재형 기자 jhpark@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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